인스타를 보다 보면 왜 남과 비교하고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까?
남의 모습과 형편을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자기와 견주게 됩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누가 더 잘하는지를 계속 재면 부러움과 질투가 붙고 지금 자기 삶이 부족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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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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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모습과 형편을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자기와 견주게 됩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누가 더 잘하는지를 계속 재면 부러움과 질투가 붙고 지금 자기 삶이 부족하게 보입니다.
돈의 증감과 자기 기분이 바로 붙어 있으면 돈이 들어오는 날에는 마음이 올라가고, 돈이 나가거나 줄어드는 날에는 마음도 함께 내려갑니다.
취업을 하나의 생활 문제로 보기보다 성공 경쟁의 순위처럼 보기 시작하면, 아직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인생 전체가 뒤처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미 있는 지식과 정보에 계속 기대면 새로운 것을 직접 보고 느껴 말하기보다 이미 있는 표현을 다시 섞어 쓰는 데 그칩니다.
아이를 뒤처지게 하면 안 된다는 걱정이 커질수록 학원과 과외를 계속 붙이게 되고, 교육비가 가정 전체의 경제를 압박합니다.
무엇을 볼지 스스로 정하며 보는 시간이 아니라 다음 자극을 따라 계속 넘어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가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떠밀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먹고살 일이 불안하다고 느끼면 쉬는 시간조차 불안해지고, 나이가 들어서도 다시 일자리와 돈벌이를 찾아야 마음이 놓이는 상태가 됩니다.
거울에 얼굴이 비치는 것과 그 얼굴을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은 다릅니다. 얼굴을 보는 순간 잘났다 못났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하는 생각이 끼어들면 얼굴 자체보다 자기 판단을 먼저 보게 됩니다.
두 가지 길로 읽기
위의 52개 질문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실제로 묻는 말에서 시작합니다. 질문 하나를 고르면 그 문제와 관련 있는 봄 원문을 바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래 1,673개 항목은 봄 글 2,756편을 읽으며 반복해서 확인된 생각·감정·행동·관계의 여러 모습을 원문과 연결한 색인입니다. 제목이나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원문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생활 속 질문에서 시작해 원문으로 가도 되고, 아래 목록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걸리는 글부터 읽어도 됩니다.
생각이 없다는 또 하나의 생각에 속아 마치 자기가 생각 없는 자리를 깨달은 것으로 착각한다.
모든 사람들과는 물론 부모나 동기들과도 구별되고 동떨어진
부부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친구지간에 상사와 동료지간에 나를 코너에 몰고 핍박하고 걸고 넘어지려는 사람들이
남에게 무작정 지지 않고 이겨먹으려고 하고
근심 걱정할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을 떠올리거나 만나면 심기가 불편해지고
지금 누구를 갈구하는 마음을 일러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고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슬프고 애달픈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친구간에도 연인간에도 동료간에도 심지어 도반간에도 눈을 맞추지 못하고 눈을 피하며 산다.
거지는 부자가 되는 꿈꿀 필요가 없고
수행법 역시 복잡하고 난삽하여 생활 가운데 실천하기 불가능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울그락 불그락하면서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여 폭풍의 회오리에 몰입되어 (沒入) 빠질 수밖에 없어 고요를 상실하여 고통스러워 집니다.
철들지 않은 사람은 가만 있지 못하고 부시럭대는 바람에 낭패를 당하고 고생이 막심해진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스럭대고 궁시렁대면서 움직이려는 성향이 있어 잠시도 쉬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직접적인 인간관계나 삶의 체험보다는 게임이나 드라마나 만화나 영화를 통한 가상적인 공간에서의 체험이 자기의 삶의 체험이 되고 있다.
의식의 스크린에 항상 가상적인 이미지, 생각, 기억, 공상, 쾌락이 난무하여 현실감이 떨어져 버린 까닭이다.
자기의 걷는 동작이나 주위의 배경이 의식의 스크린에 잡히지 않게 된다.
자기의 말이 속다르고 겉다른지도 모르고
가슴 깊은 곳에서 뒷받침되지 못하고 두뇌에서만 나오는 생각은 형식적이고 천박하여 감동이 없어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흐리고 우울하고 불쾌한 마음의 어두움을
가슴이 아리아리하고 (허전하고) 스리스리하니 (허망하니)
씨족주의 민족주의는 우리를 편가르고, 다투고 싸우게 만드는 요인이다.
생각의 회로와 연결시켜 대답을 만들어내거나 꾸미느라고 직답이 안나오고 뜸을 들여 생각해내느라고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갈등의 (葛藤) 상태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경계를 당하여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지면 생각으로 따지고 분석하여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분석하여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속으로는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겉으로는 긴 것처럼 가식적으로 거짓 화평을 하는 사람
후회하고, 반성하고, 슬퍼하는 내면의 모습과 소리와 일체의 현상에
감각을 억압하고 생각을 통하여 대립 갈등 투쟁하며
청각을 아예 닫아 마비시켜놓고 마음이 고요해졌다고 착각하고
사람들은 일상생활 가운데 아주 작은 데서 오는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몸이 자기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드넓은 하늘과 빛나는 태양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 어둡고 답답하고 괴로운 삶을 살므로
상대의 언행에 대한 느낌이나 감동이나 이해했던 사항에 대하여 입을 다물지 말고 고백하고 감탄하고 긍정해주어야 상호간에 정감이 교류하고 소통이 이루어져
설사 감은 있어도 생각이 여물지 못하여 개념화 논리화하는 능력이 부족하여도 말이 막힙니다.
감정이 억압되어 습기가 (濕氣) 얼어붙든가 구름이나 안개의 형태로 드리워져서
감정의 소통과 공감과 이해가 무디고 부실하고
여기서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집니다.
대단히 놀라 당황하고 싫어하지만
자기가 할 일이 갑자기 없어진 순간
술에 약한 사람에게 술을 따르거나 잔을 돌리고 비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도리어 형식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행동이다.
감정에 영향을 받거나 물들지 않게 되고
노는 나는 점점 더 스릴이 넘치고 충격적이고 재미와 안락을 추구하지만 늘 공허할 것이며
별도리가 없다느니,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느니 하며, 체념과 허탈 속에 속수무책으로 악몽을 (惡夢) 꾸며 살아간다.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이끌려사는 부자유와 무능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쳐박히고 또 쳐박히면서도 대책없이 속절없이 임시미봉책에만 매달리고 사는 것이
이미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얻었으므로 눈으로 정기를 모으는 것만 반복하는 것은 싫증이 나고 권태로워
자기들 끼리도 통합하지 못하고 분열을 하고 있으며
늘상 그렇게 살다가 보니 늘 그래 버릇을 하다보니 이제는 당연지사가 되고 말았다.
광명의 하늘에 대하여 지식이나 정보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은 해오(解悟)의 차원으로서 늘봄이 불가능하여 다시금 놓치게 되고 아픔과 괴로움을 당하여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개인, 씨족, 민족, 국가 단위로 대립 갈등 투쟁하는 경쟁의 구도로 전개되었다.
개인적인 성향으로도 분열하는 데 비해
거리감이 있는 가운데 보면 알게 모르게 실랑이가 벌어지고
대립 갈등 투쟁이나 판단 평가 심판이나 근심 걱정 불안 공포라고 하는 삶의 문제는
거짓말을 하면 떳떳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여 쭈글스러워지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안하고
누가 조금 비위를 거슬리거나 건드리거나 찌르는 날이면 여지없이 폭발하고 맙니다.
그것을 모면한답시고 마음(ego)은 꾀를 부려 엉뚱한 생각이나 즐거운 공상 속으로 도망가서 거기에 빠지므로
겉 다르고 속 다르기에 하나의 나가 두개의 나가 되어
텅비고 고요하기만 하고 화안한 광명이 없으면 무기공(無記空)이요 무정란(無精卵)으로 생명이 없어 무기력 합니다.
똑똑하기는 한데 편안하지 못하다는 것은 균형과 조화가 깨어짐입니다.
전통이나 관행 등 율법에 매여 겉으로 섬기는 척하고 복종하고 타협하고 답습하는 것은
겉으로는 태연한 체 하지만 속으로는 이러한 근본적인 고통을 부여안고 살고 있는
남의 언짢은 언행에 (言行) 대하여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해놓고서는 지나간 다음에 속에서 편치 않은 생각이 꿈틀꿈틀
게임이나 오락을 하고 싶은 욕구가 남아 끝없이 추구하고 빠져들고 윤회한다.
막대한 결혼 경비가 필요하다 보니 초청장을 남발하여 하객을 끌어모으기에 이르렀고
겸손이나 친절을 가장하지 (假裝) 않아도
겸손이라는 연기를 하느라고 자기를 낮추고 남을 받드는 언행을 구사하기 위해 일정한 틀에 맞추려다 보니
돈벌려고 안달하지 않아도
생각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든 인간이
생각을 위주로 살면 따지고 분석하여 힘이 빠져 공부하기 싫은 생각이 자리잡고
하루 이틀은 덕을 보지만 오늘은 기운이 딸려 헛바퀴가 돌아가 무기력해지는 감이 오므로
잡념 때문에 공부 잘 못하고 일 잘 못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노라면 무상감에 (無常感) 빠져들기 쉽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기성세대와 신세대, 좌파와 우파지간에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져 하나로 소통하여 분열이 합일이 되는
우리가 생각으로 절망에 빠져서 그렇지
도망자의 고달픔을 잠시 잠깐이라도 망각하기 위해 쾌락을 찾아 놀이나, 게임이나, 오락이나, 영화나, 음악이나, 스포츠에 몰입하기를 (沒入) 좋아하여
그것도 모자라 게임이나 일의 중독자가 되기도 한다.
고민에 빠져 포기하고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대
한 생각을 쫓아 임시방편을 구사하여 미루거나 도피하거나 하여
생각으로 관념적으로 보면 고생은 고생이고 낙은 낙입니다.
이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침묵을 두려워한다.
앉아서도 졸다가 망상하다가 졸다가 망상하다가 이러다가 끝나니
잡았다와 놓쳤다가 되풀이 되는가? 아니 되는가?
고요하고 일없는 자리만 지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무한하고 영원한 힘이 생각에게 제한당하고 한계 지워져 감각이 위축되어 정신이 나가고 얼이 빠져
부처라고 하면 성스럽고 깨끗하다는 선입관이 누구에게나 있는대
그런 고정관념이 많을수록 고루한 사람이고, 복잡한 사람이고, 갈등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고, 자기와 주변을 오염시키는 사람이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화된 선(善)을 추구하고 따르는 것이 대립 갈등 투쟁의 분열의 삶이요
이것이 버르장머리가 되었고 고질병이 되어서 언제나 도망자의 비애와 무력감에서 항상 고통을 두려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죽고싶다는 아우성이 사라질 것 입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울움을 울며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자기의 말소리를 듣는 것은 그동안의 버릇으로 인하여 대단히 어렵습니다.
공격과 (攻擊) 방어, (防禦) 질의와 (質疑) 해명이 (解明) 반복되다가 (反復)
그 속에 빠져 더불어 존재하는 주위와 만물을 거부하고 없애고 자기 홀로 존재하려는 것
공부하고 일하고 돈벌고 출세하려고 하는 것은 그 끄트머리에는 놀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다시 졸리고 싫증이 나면
공부한다, 일한다고 생각하면 몸도 마음도 무거워지고 부담스러워진다.
공부하느라 고생하였으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놀아야겠다는 욕망
공부하거나 일하기는 싫어하지만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한 생각 강박감이 의식의 공간을 장악하면
학생들은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워 공부하려고 해도 하기가 싫어 죽지 못해 학교에 나가고
공부하기 싫다는 생각이 자기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내어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맞서는 바람에 공부라고 하는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싸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을 통해 밖으로 추구하는 업력과 (業力) 돌아봄을 통해 안으로 비추는 법력과의 (法力) 싸움을 통하여
아예 감각을 기피하고 억누르고 나아가서 무디게 만들고 못쓰게 만들어 아예 심심함이나 공허감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얽히고 설킨 마음의 실타래 풀고
생각이나 감정은 자기라고 하는 주관, 자기라고 하는 기억의 뭉치, 경험, 지식 등으로 조건부여된 데서 나오는 순간 순간의 조건반사 현상이다.
생각이란 과거의 기억이나 선입관 고정관념으로부터 일어난다.
생각은 과거의 기억이나 지식 선입관 고정관념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므로
지난 과거의 기억을 갖고 시비하고 따지지 않는 사람이라야 봄이 온 사람이다.
과거의 기억을 잣대로 삼아 지금 여기의 상태를 비교하고 대조하고 점검하여 판단 평가 심판하는 것 역시
생각은 과거의 행적(기억)에 대하여 시비선악을 가리고 어떤 결론을 지으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해서 아이고 아무 것이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이놈이 죽일 놈이고 뭣이 잔뜩 가지고 있어.
상대의 반응을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예측하는 것은
대립 갈등 투쟁의 삶을 살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이나 정보라고 하는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한 생각을 보태어 나오므로 낡은 것이 되어 창조적이 아니어서 지금 여기에 대두되고 있는 사물의 핵심을 잡지못하고 겉돌아
많은 여성들이 낙태의 경험이 있고 종교집단에서 죄라고 가르치는 바람에 천도재를 지내는 등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나간 과거가 현재의 자리에 차고앉아 현재로 행세하고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의 자리에 차고앉아 현재로 행세하여 헛것 환상이 마치 실제하는 것처럼 작용함 입니다.
과거의 나(마이너스의 나)와 미래의 나(플러스의 나)와 현재의 나(제로의 나)가 혼재(混在)하면 혼란(混亂)이 생깁니다.
과거의 자기와 현재의 자기, 현재의 자기와 미래의 자기라는 두개의 자기로 분열된 가운데 서로 대립 갈등 투쟁을 벌이며 살고 있는
현재가 과거에 연루되고 (緣累) 현재가 미래에 연루되어 시간적인 분열에서 오는 자기에 대한 판단 평가 심판 근심 걱정 불안 공포 대립 갈등 투쟁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내가 나를 심판하고 내가 나를 벌주고 내가 나를 가두고 내가 나를 괴롭힌다.
몸을 자기로 여기는 생각(ego)이 과거의 자기를 기억 확인하고 미래의 자기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살아남기를 기대하기에
보긴 보았으되 제대로 보지 못하였고 듣긴 들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과 한이 남아있다가 불쑥 고개를 쳐든 것이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서운함이 남고 원망심이 있다면
지나고 난 다음의 기억이나 영상을 붙들고 뒷 생각이 앞 생각을 판단 평가 심판하고 자해하는 것이 고작이다.
광명의 하늘을 기억하고 지금 여기에 확인시키려고 함은 새로움이 아니고 낡은 것입니다.
매번 떨리고 있는 실력도 제대로 발휘 못하면서도 과도하게 바라는 욕심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양이 음을 누르고 지배하는 것으로 윤리도덕을 세웠으나
군림하려는 것이나
복종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참으로 진실하지 못하면서 그게 하나야? 내안에서 둘이잖아.
대상을 바꾸고 끊임없이 추구하더라도 또 다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생각을 통하여 외부지향적인 원심력에 끄달리고 있습니다.
대인관계나 일에 임하여 스스로 생각을 통해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하여 닦지 않고 억압하거나 따돌려 쌓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미지의 죽음이 두려워 죽음을 회피하고자 다시금 일이나 놀이에 빠져 죽음을 따돌리려고 한다.
당국은 당국대로 선생은 선생대로 학부형은 학부형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방황하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만든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여유시간을 향유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시간에 쫓겨 사는 형편이고
구호만 있지 실천으로 이끌어주지 못하는 공허한 말 입니다.
어둡고 괴로운 사람의 얼굴을 보면 마주 대하는 사람도 따라서 괴로워진다.
고정된 성질이나 기질이나 체질이 없음이다.
그릇된 습관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이 무의식으로 자리 잡아 업(카르마)이 되어 자기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궁시렁거리지 않고 언쟁을 (言爭) 하지 않아서
권력을 잡기 위해 동지가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친구가 되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거래관계로 끝날 수밖에 없다.
권력을 잡으려고 하고
교리가 도그마(독단)일 수밖에 없고 권위주의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율법을 강요할 수밖에 없어
권위나 명성에 짓눌려 낡은 법을 과감히 버리지 못한채 낡은 책에 매달려 책장을 뒤적거리고 있다면
권위주의적인 자존심으로 (自尊心) 똘똘 뭉쳐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인정할 (認定) 줄 모르는 고집불통의 (固執不通) 우둔한 (愚鈍)
그러한 태도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위압감을 느껴 속이 편치않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언행을 하지 않게 될 것 입니다.
균형과 조화가 무너져 부족하고 욕구불만이 생깁니다.
그럴듯하게 거짓말 하는 남의 말에 결코 현혹되거나 (眩惑) 속아 넘어가지 않게
그렇게 집요하게 그리움이 찾아오고 물고 늘어진
권군은 자신이 사는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 옥상 20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극심한 빈부의 (貧富) 격차로 계층을 분열시키고 (分裂)
근무시간중에 퇴근 시간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살지 않아
근본적인 의문 무명이 타파되지 않아 가슴깊은 곳에는 여전히 답답합니다.
근심 걱정 불안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이다.
근심 걱정 불안 공포심이 일어나고, 이 불안 공포심에 대하여 다시금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이 글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글을 쓰려고 하는데 글이 줄줄 나오지 않고 막히는 순간
급박한 (急迫) 목숨의 호흡을 하면서 헐떡거리며 사는
택시는 기다리고 있는데다가 주위를 시끄럽게 하여 당황하던 끝에
긍정적인 마음에 사로잡혀 안주하거나 자만에 빠지면
긍정적인 한 생각도 돌아봄하지 않고 넘어가면 선입견이 되고 고정관념으로 정착하여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도구와 기계를 사용하여야 할 사람이 주체성이 서지 못하고 정신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도구에 빠지고 매몰되어 기계의 노예가 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기고만장하여 (氣高萬丈) 남을 무시하고 자기 소리만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스마트폰에 빠져 자기를 잃어버린다면
기다리던 도인은 아니오고 한심한 사람들, 엉뚱한 사람들만 보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치고 괴롭습니다.
기다림에 빠져들면 지금 여기의 생생한 삶을 놓칩니다.
기다림에 빠져 지겨워하거나 아예 눈을 감고 무의식인 잠에 빠져듭니다.
초조해하지 말고 수승화강의 (水昇火降) 수행에 간단없이 (間斷) 정진하면
하늘을 믿어워하지 않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怨望) 한 생각을 내어 판단 (判斷) 평가 (評價) 심판으로 (審判) 하늘을 불신하여 (不信) 하늘에게 삿대질하거나 따지고 들지도 말고
혁명가는 다시금 기득권자가 되어 또 다른 혁명가의 철퇴를 맞는 일이 되풀이 됩니다.
기분이 나쁘면 마음이 우울하고 불쾌하여 모든 것이 미워 보여서 자연이나 사람을 대함에 소홀하거나 옹색해진다.
떠들썩하니 붕뜨므로 안정을 잃고 위태로워져 도리어 괴로워지기 십상이어서
생각은 좋다 나쁘다라고 양분하지만
기존의 도덕이 무너져 세대와 세대의 갈등이 첨예하고
조금이라도 끌리지 않고 애착탐착이 없도록 하여
멀고 가까움이라는 상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광대무량한 공간을 보면서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견성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입니다.
우울하고 냉랭한 기질이
뒤집기도 할 줄 모르는 자가 달리려고 하고 달릴 줄도 모르면서 축구를 하려고 한다면 어불성설 (語不成說) 입니다.
자주 깜박이고 팔랑거리는 현상이 멈춘 가운데 긴장하지 않은 순한 눈이 되어
까다롭고, 소극적인 성질이
헛것을 보고 깨달음으로 오인하여 깨달았다는 상을 갖고 우월의식을 지니는데
내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상이 생기면
도를 구하는 마음 역시 욕심입니다.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깨달았다고 하여도 일상생활 가운데 몸과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는 데 정신을 쓰지 않으면 정신이 다시금 흐트러져
이러한 생각에 속아 사람들은 돌아봄의 수행을 하지 않는다.
꿈을 꾸었으니 공부가 퇴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 역시 꿈을 꿈이다.
눈으로 정확하게 보지 않게 되는 까닭은 생각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생각을 통하여 끊임없이 따지고 분석하여 분열을 통하여 자기를 심판하고 남을 심판하여
끝없는 욕심에서 야기된 경제문제가 없어지니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다시금 내려가 돌을 굴려올리는 일을 평생토록 하다가 생을 마쳐야 하는 고단한 인생살이.
하고 싶고, 보고 싶고, 가고 싶고, 갖고 싶고, 뽐내고 싶은 생각이
끝없이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동물성을
이고(ego)는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만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는 양심적이고 올바르고 깨끗하고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픔은 분열에서 오고 분열은 한 생각 일으키는 데서 오고 한 생각은 나라고 하는 아집에서 (我執) 온다.
더럽고 싫고 추한 것이 없는
"보는 나"와 "보이는 나"로 나가 분열된 (分裂) 상태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일어나 너와 나로 분열되면서 번개같이 시비가 일어나고 사량분별이 (思量分別, 판단 평가 심판) 일어난다.
나와 남으로 분열되면서, 대립 갈등 투쟁, 화해 협상 절충 타협의 세상이 벌어진다.
행위자와 주시자 나와 남이 분열되어 부족하여 외롭고 서럽고 한이 되지만
나와 너 여기와 저기로 갈라지는 순간 거기서부터 고통이 생긴다.
지식인이 되고, 부자가 되고, 권력을 잡고, 명성을 날리고, 나이만 먹는다고 되지 않는다.
자기 보다 나이가 적은 동생이나 (同生) 후배이거나 (後輩) 지위로 (地位) 보아서 자기 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자기가 먼저 다가가 자기의 잘못을 빌거나 고백하지 않기에 서로간에 소통이 (疏通) 불가하여 불통이 (不通) 되기 예사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연령이나 지위를 빙자한 권위주의가 (權威主義) 마음(心)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는 더이상 존경받지 못하는 세상이
화창하게 맑은 날에는 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지고요.
모가 난 사람은 날카롭고 좁은 사람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를 구속하고 강제하고 불편하고 괴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자기와 남을 비교하여 자기 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면 욕심이 생겨 스스로 불행합니다.
에너지가 남과의 속도를 비교하여 빨리가려다 보니
남과 언쟁을 하면 그 자체가 무척 힘들고 괴로우므로
남과의 언쟁이 있은 후 깨끗하게 지워져 잔잔하지 않고 머리 속에서 생각이라는 파장 파동이 미세하게 (微細) 남아 일어나는
사람은 남에게 들키지 않을 뿐 더러 자기 스스로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보다 낫고 못하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남들은 자기를 다 아는데 자기가 모르면 자기를 고칠 수 없습니다.
남에 대한 우월감이 있고 자존심이 있어 무언가 교만하고 냉냉한 감이 있다.
남에게 의존하거나 남으로부터 한두 마디 얻어듣고 복을 구하거나 깨달으려고 하는
시기 질투가 나쁜 것이므로 시기 질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율법에 얽매어 스스로 자기를 심판하여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남에게 바라는 것이 없기에 간섭하거나 강요하거나 비난하거나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남들이 가르쳐주는 체조나 요가동작을 생각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이따금 기계적으로 해보다가 잊어먹으면 무한정 중단합니다.
남에게 욕설을 하거나,
자기를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적극적인 남자를 만남에 여성의 역할을 하며 살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실현시킬 찬스를 맞아 이혼을 하였다.
남이 나에게 잘 해주기를 바라거나 남에게 기대지 않아
남에게 잘하려고 하다 보면 유위법이 되어 형식적이거나 거짓선이 되기 쉽고 생각대로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 괴롭습니다.
자기의 표정을 남에게 좋게 보이려고 맑고 밝은 표정을 일부러 짓는 것은 위선이다.
남에게 지지 않고 이겨먹으려고 생각으로 따지고 분석하여 시비를 일으키므로 대립 갈등 투쟁을 유발하므로 항시 두뇌가 시끄러워 부딪치고 깨어지고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아 괴롭고 불행하게 삽니다.
남에게 폭력을 하는 행위는
남에게 성내거나 미워하면 자기의 몸과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진다는 사실을
남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자기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우리는 남을 보는 것은 자기를 보는 것에 비해 비교적 정확하게 본다.
남의 걱정을 하는 순간 남을 바로잡으려고 생각을 굴리고 입을 여는 순간 제 속이 상하고 문드러지는 줄 알아서
남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군림하고, 이용하는
남을 미워하고 남과 싸우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는 사실을
한 생각이 일어남에 할퀴거나 물려고 하거나 막말을 하거나 악플을 달면서 대립 갈등 투쟁이라는 소용돌이를 일으킵니다.
남을 미워하는 자기의 이고(ego)를 발견함으로써
남을 미워하면 자기 자신이 고통이라는 형벌을 받는다는 사실
평생을 통해 아내(남편)를 바로잡으려고 하고 자식을 가르치려고 하고 국민을 개도한다고 투쟁하지만
남을 선악으로 심판함으로써 몸이 차갑고 마음이 어두워질 때
남을 이기고 남에게 대접받는 것이 삶의 목표였으나
남을 심판하는 길을 걷게 되면 자꾸만 오해가 쌓여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의 언어나 행동을 보고 판단 평가 심판이 일어나면서 분노가 일어나면 속이 상하여 괴로워진다.
부모나 교사나 사회가 바라는 압력에 편승하거나
덕을 보자고 거짓으로 끄덕이고 웃고 아부를 했는데
남의 말은 건성으로 듣고 자기가 할 말에만 관심이 갑니다.
들리는 말을 곡해하고, 오해하고, 따지고, 비난하지 않고
공연히 사서 하는 걱정입니다. 평생 남의 걱정 하다가 인생을 끝마칩니다.
남의 실수나 허물에 대하여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 울컥하고 올라오면서 따지고 공격하지 않게 됩니다.
남들이 아부하는 꼴은 못마땅하게 보면서도 자기에게 아부하는 것은 은근히 좋아한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판단 평가 심판이 일어나면서 속에서 싸움이 일어나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남의 일거일동에 사로잡히거나 흔들리지 않아 중심이 잡힌 사람
남의 일에 끼어들고 간섭하고 걱정하는
청소년이 어른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는 순간 한 생각을 내어 무작정 미워하기만 하면
남의 험담을 하지 않아서
바라봄으로 남의 흉을 보면
남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와도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천지만엽으로 흐트러지는 마음을 수습하여 하나로 모은다는 말이다.
작곡자가 만든 음악을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청중의 한사람으로 쫓아 다니면서 듣기만 하는 따라지 신세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성을 내지 말라고 명령하여 말을 잘 듣는지 여부를
남이 나를 업신여길까봐 전전긍긍하여 마치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것이 자존심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고 이름을 날리려고 하고
나는 남 잘 되는 것 보지 못한다
남의 험(險)을 잡거나,
정신이 나가는 순간 자기가 읽고 있는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되니
잠 가운데 꿈을 꾸는 일은 과거에 불완전 연소로 남아있는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뇌의 작동이요 일입니다.
놀라 자빠지거나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할 것
그러한 자기의 내면이 괴롭고 답답하여 위로를 받고 싶고 재미를 보고 싶은 욕구불만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아, 내가 도 이만큼 닦고 이래 결심하는데 아직도 시기 질투심이 있어?
왜 나는 이 모양이야?
마음의 난리를 다스리지 못하여 얼굴이 어두워지거나 찌그러져
갈등의 상태가 조성되어 무기력해 집니다.
갈등이 생기는 길을 가면 그 자체가 괴로움이고 불행입니다.
대립 갈등 투쟁이 야기됨을 즉각적으로 주시하고 감각하여 알아차리면서 경험을 하여 닦아 지우고 해소하지는 않고 도피하고 억압하여 쌓이고 쌓이게 되면 기분이 나빠지고 몸의 컨디션이 나빠지는
내적인 혼란(대립 갈등 투쟁)에서 출발하면 외적으로도 혼란은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나 쉬워서 믿지 않는 것이 문제다.
노랫말을 들으면서도 그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노령이 되면 노후 대책에 신경을 써 또 다시 직업전선에 나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일하다가
놀기 위해 시간을 기다린다거나 놀기 위해 공간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누구인가를 보면서 속으로 궁시렁거리는 기미를 (幾微)
눈을 뜨자마자 라디오를 듣고 테레비를 보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등하교 출퇴근을 한다.
노려보거나 깔보거나 째려보는 눈초리로 의사를 표현하는
눈빛은 은은하되 흐리멍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안된다.
글자를 틀리게 읽는 까닭은 눈으로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는 점을
일평생 동안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에 대한 꿈을 꿀 뿐 행복은 누리지 못하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빛나는 본태양에 대하여는 그 가치와 의미에 소홀합니다.
주변과 환경을 배제하고 왜곡한 가운데 차단과 고립에서 오는 고독이 있다.
심보가 (心褓) 협소하여 (狹小) 포용하지 (包容) 못하여 시비분별로 다투고 싸우던 성질이 (性質)
대부분 남과 눈을 맞추는 것이 겁이나 정면으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피하는 것이 사실이다.
속 끓을 일 만들지 않고 속 썩을 일 만들지 않아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천박한
그 사람 왜 그 모양이지? 그 사람 왜 그런 소리를 하지? 그 사람 왜 그렇게 나오지? 이런 의문은 자주 발하면서도
시자가 손가락을 들어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측통행을 하지 않고 좌측통행을 하고 있어 그것을 볼 때마다 심기가 불편해짐을 봅니다.
스스로 알기가 어려우므로
그렇게나 양 손가락으로 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는데
자기와 견해가 다르고 의견이 다르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남의 표정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부정하고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은
다투고 싸우느라고 혼탁한 마음이 깨끗해져 조용해지면
근심 걱정 불안 공포와 판단 평가 심판과 대립 갈등 투쟁의 소용돌이가 평상심 이었습니다.
자기를 칭찬하는 자에게 약하여 그에게 의존하고 그를 기다리고, 그를 반기고
언제나 무언가 답답하여 들판에 가보거나,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거나,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거나, 바다에 배를 타고 일주일씩이나 항해를 해보아도
답(答)을 내는데 생각으로 분석을 (分析) 하느라고 시간이 걸리는데 반해
질문에 빠져 답을 알아듣지 못하였으므로 머뭇거리는 사이에
문제에 봉착하면 당장 알아낼려고 생각을 굴리려고 해서는 안되고
즉시 답이 안 나온다고 답답한 심정을 스스로 제어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대립 갈등 투쟁이라고 하는 패턴을 벗어날 수 없다.
대립 갈등 투쟁하는 상극의 (相剋) 성품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버릇을 고치기에
생각을 위주로 하는 양자택일의 이분법적인 삶을 말합니다.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지겹다는 분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심이 서지 않고 촛점이 맞지 않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잘못 보아
대상도 오감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밖에 알지 못하니 희미하여 온전하지 못하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삐뚤어지지 않도록 바르게 균형을 잡아서
대화나 연설시에 말이 막히는 순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앙금만 남아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자기를 확장하기 위해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탐한다.
더 이상 고임금을 위해 직장을 옮겨 다니지 않음으로서
일하는 나는 보다 빨리 많이 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언제나 피로와 권태와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아름답게 보이려고 얼굴을 뜯어고치는 것이 성형수술이다.
나는 왜 좋은 가정에 좋은 부모님 밑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탐욕이 일어나지 않으니
덥다 덥다 춥다 춥다고 비명을 지르지 않고
사람들은 억지로 꾸며 웃고 미소로 표정을 꾸민다.
마약에 (痲藥) 중독되어 (中毒) 파멸과 (破滅) 자멸과 (自滅) 멸망의 (滅亡) 길로
놀음에 빠져서 재산탕진을 (財産蕩盡) 하거나
간섭하고 속박하여 자유롭고 천진스러운 천성을 구박한다.
매너리즘에 (mannerism) 빠져 또 하나의 습관적 기계적 타성적이 되어
머리로 생각의 차원에서 나온 말이니 감각으로 가슴에 가 닿지 않아 의식의 테두리에 머물지 못하여 이내 망각하고 (忘却) 마니
도전의식이 부족하여 안일하게 편한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부자유하고 무감각하여
그렇게 하면서 살면서도 무의식적 무자각적이므로 정작 그렇게 산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삽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성이 있어도 만족이 없고 돈이나 권력이나 명성이 없어도 만족이 없으니
목표가 이루어지고 나면 잠시 잠깐의 만족이 있을 뿐 만족감은 사라지고 말아 다시금 허전해진다.
돈은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고 모을 줄 아나 돈의 실상이요 진짜 돈인 도(정신)를 대단하게 여기고 아끼고 모을 줄 모른다.
진짜 부자장자가 되려면 현상적인 경제에서 돈을 많이 벌어 등기부등본을 갖고 있다고 소유라고 하는
돈벌이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라고 하면 독재도 아랑곳 하지 않아
생각의 모드에서 보면 돈이 최고인 듯 보이지만
돈이 들어오면 좋아하고 돈이 나가면 싫어합니다.
문제에서 오는 고민이나 돈을 벌려고 하는 궁리에도 빠지지 않는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죽는다는 두려움이 있는지라 돈이 많은 재벌들의 머슴살이를 자임하여 돈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타인의 동정을 유발하기 위하여 기어들어가는 약한 소리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을 스스로 정해 놓고 자기의 노력을 통하여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뭔가 되는듯 하다가도 또 무너지고 하면서 엎치락 뒤치락거리면서 좀처럼 잡히지 않아 안달이 나고
이원성에서 나온 생각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잡념이나 희론에 빠지게 하여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남을 볼 때마다 무작정 큰아이가 미운 생각이 들고 작은아이 편을 들게 된다고 하였다.
마치 절벽 앞에 선 것 처럼 아찔하여 두려움을 느껴 피해버립니다.
찬스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두렵다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더 이상 바라보고 조사하고 발견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외면해 버리기 때문 입니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남성과 여성, 구세대와 신세대,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 자유와 평등, 정신과 물질, 동양과 서양간의 대립 갈등 투쟁의 구도가 벌어진다.
갑자기 생각이 끼어들어 입력된 기준에 의거하여 판단 평가 심판이라고 하는 출력현상이 일어나면 생각의 모드로 돌아가 소리의 평등성이 깨어집니다.
자꾸 뒤로 미룰라 카고 안 할라 카고.. 겁나.
남의 언행을 따지고 다투고 공격하고 시비하여 대립 갈등 투쟁을 야기한다.
사고, 기억, 분석, 추리, 논리만을 일삼다 보니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촉감하는 우뇌의 감각 감상의 기능이 도외시 당하고 밀려나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있습니다.
깨고 나서 왜 이런 꿈을 꾸느냐 하고 따지는 것 또한 꿈을 꿈이다.
의심하고 부정하고 시비걸고 따지고
운전할 때에는 그 어떤 생각이라도 운전에 방해가 되고 사고의 (事故) 위험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면 싫다든가 좋다든가 하는 분별이 생기는 찰라 잇따라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지금까지 등돌리고 외면하고 숨기고 보기를 거부했던 엄연한 내면의 현실세계를 열어 젖히는 것이다.
말은 입자적인 요소가 주가 되다 보니 파장적인 요소인 고저장단이 희미해집니다.
뜻의 전달에 치우치면 일정한 패턴에 틀이 박혀 곡조가 단순하고 다양하지 못하여 듣기가 지루하고 권태로워 집니다.
파장적인 요소에 치우쳐 노랫말(가사)에 대한 감상이 없이 건성으로 발음하면서 노래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색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조롱박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혹시 실수로 소아가 행동을 주도하게 되면 당장 힘이 들고 싫증이 나고 피로하고 노곤해진다.
마음이니 몸이니 하고 부름으로서 서로 떨어져있는 둘로 생각되어지기 마련입니다.
마음과 몸이 단절되어 몸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면
그동안 마음을 숭상하고 의존하였던 전통과 버릇을 깨고
자기 맘에 드는 사람들과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로 분류를 하면서
몸의 반영인 마음이 몸을 이끌다보니 힘이 들고 번뇌망상에 시달립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면서 정상궤도를 이탈하게 되어 운행의 질서를 잃어 떠돌아 헤매게 됩니다.
마음은 심심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하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꼼짝달싹도 하기 어려운 순간
마음이 요란하거나 몸이 나른할 때
자기 안에 갇혀 꽁해졌기 때문이리라.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마음이 먹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中)>이 무너지고 조화가 (調和) 무너져 고통이 (苦痛) 발생할 때
마음에 근심 걱정 불안 공포라고 하는 먹구름이 많이 끼어 있으면 내면의 하늘이 흐리거나 어두워져 얼굴에 그대로 표정으로 나타난다.
마음은 늘 자기에게 폭력과 행패를 부린다.
가슴이 닫히어 비좁고 어둡고 차가운 사람은 상대방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 공감하지 (共感) 못하고
마음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참지 못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현상에서
들끓고 일어나 시끄럽고 혼탁하고 사사롭고 어두운 마음을 따를 것인가?
마음의 무거운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비우지 못한 가운데 무슨 일을 하면 금방 지치고 싫증이 난다.
마음이 비워지는 순간을 맞이하면 즉각 심심하다는 생각이나 두려운 생각을 일으켜
몸만 뻣뻣한 게 아니고 마음도 뻣뻣한 줄 아십니까?
생각의 분열로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나
마음이 실리지 않은 친절이나 예의범절은 과례가 되거나 비례가 되어 역겨워지기 마련이다.
아프고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을
어두운 마음이 되면 내면의 광명을 열어 밝은 마음으로 조정하고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조정하여
어둡고 비좁아 답답하고 분주하여 괴롭습니다.
기분 나쁘거나 우울한 마음의 상태를
멍청하거나 졸리는 혼침해지는 마음을 다스려
유심의 상태에서 마음이 산란하여 (散亂) 안정을 잃으면 정신이 나가게 되고
마음이 흐트러지면 고통과 괴로움이 생기고
몸이 천근만근이 되고 늘어지는 현상이 줄기차게 침범한다.
사람을 보지 않고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쳐가지 않고
하늘 구만리 넘어 계시는 초월의 하나님을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만나기 이전에는 그리움에 사무치지만 만나보면 속이 차지 않아서 시들해지고 맙니다.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을 쫓아 욕심을 부리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면서
어디에도 자상하게 안내하는 로드맵이 (road map) 없어 실망천만하여 그 모든 책을 모조리 버린 다음
끄트머리 소리가 늘어지는 소리를 내거나 혹은 싸우는 소리가 나오거나
언쟁을 (言爭) 하지 않고, 남과의 싸움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소리인지라 무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고 인위적이고 조작적이고 유위적이어서 넘치거나 쳐진다.
잘하려고 꾸미지 않아서 소박하고 진솔한 참말이 나옵니다.
공부나 일을 잘하지 못하는 까닭은 생각을 통하여 내용을 파악하려는 경향성 때문에 자기나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의 세기와 흐름이 다양하지 못하여 틀에 박힌 단순 패턴이 반복되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의식의 수준이 서로 다르면 서로 통하기가 어렵고 답답해진다.
생각(좌뇌)이 앞서고 그 뒤를 말(입)이 따라가는 형식이 된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극명하게 분리 분열이 되어 하나로 돌아가지 못하면 법이 건네지 못하고 분위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고 지리멸렬하여
우리는 자기가 내는 소리를 자기의 귀로 듣지 못한다.
먹을 때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편식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보이면 정신없이 먹어 치우는 습관성이다.
지금 두뇌가 편중되어 (偏重) 있어서 망상이 (妄想)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自覺) 순간
맞나 틀리나 하는 이원성으로 헷갈려 애매모호하고 (曖昧模糊) 부정확 합니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보면서도 명료하게 보지 않는다.
매일 같이 일하고 활용하면서도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까마득하게 모릅니다.
매출을 극대한답시고 머리를 짜 내면 될 것 같지만
머리가 뜨거워 머리가 아프거나
머리가 시끄럽고 요란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난 줄 모르고 숨을 쉬면서도 쉬는 줄 모르고 말하면서도 말소리를 듣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면서도 움직이는 줄 모르고
뜨거운 머리를 서늘하게 하고 차가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고 차가운 수족을 뜨겁게 하여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행동으로 내딛지 못하는 자는 생각의 노예상태란 걸 알아야 한다.
두뇌의 생각 다르고 목 아랫 부분인 가슴의 정감이 다르면 마음 따로 몸 따로가 되어
가상공간을 만들어 숨자면
현재의 자기가 미래의 자기를 투사하여 근심 걱정 불안 공포라고 하는 악몽에 시달리는
한 생각을 발하여 나온 것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는지라 권태와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보고 싶어지는 순간 속절없이 안절부절하지 말고
망상의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고(ego)가 텅비움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저항하기 때문이다.
세속의 (世俗) 먹고 즐기면 그만이라는 천박한 (淺薄) 성품이 삶에 대한 진지한 (眞摯) 성품으로 바뀌게 되어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 관심과 에너지가 온통 밖으로 쏠려 자기의 안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먹고 살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 도래하니
사람의 눈도 먹고 살기 위하여 돈되는 것만 보는 눈은 나비의 눈입니다.
사물에 한눈을 팔고 사는 바람에 잃어버린 본연의 나를 되찾자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밥 먹고 살 욕심에 글쓰기를 버리고 다른 분야로 나아가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그것은 자기실현이 아니기에 소원의 성취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먹고 살고 생존하려는 본능에 따라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소아본위의 인생을 살고 있다.
먹고 살려고 서로 다투고 싸우는
입과 아랫배를 의식하면서 먹어야 과식이나 폭식을 하지 않게 되어
식탐하는 버릇은 고치지 않고 굶거나 식이요법을 하면 일시적으로 살이 빠지지만 그때뿐으로 다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니
가만히 있는 남을 건드리지 않아서 남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모르는 것이 없는 전지(全知)와 못할 것이 없는 전능(全能)에 끝까지 도전하여
생각이 문제를 만들고 문제를 푼다고 야단이다.
모르는 것을 싫어하고 아는 것만을 좋아한다.
기억을 더듬어 그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당황하거나 좌절에 빠지고 만다.
더위를 싫어하거나 시원함을 좋아하는 마음(생각)을 내지 않는
모르고도 아는 체 자꾸 자꾸 하다보니 거짓말쟁이가 되었구나!!
비판을 받거나 욕설을 당할 때 화가 일어나면서 싸우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끌리어 나가는 모멸감과 (侮蔑感) 분열에서 (分裂) 오는 찢어지는 듯한 심적인 고통을 (苦痛)
생각으로 끌어모은 지식과 정보를 남에게 장광설하는 것으로
딱딱한 목(고개)과 굳은 허리를
자기의 소리가 음양의 조화를 벗어나 치우친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뚜렷하기는 하나 강하고 높은 소리로 치우쳐 고요하고 부드럽고 낮은 소리를 결여하므로
고요하고 부드럽고 낮은 소리로 치우쳐 뚜렷하고 강하고 높은 소리를 결여하므로
남을 제압하려는 목소리도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목소리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불안한 소리를 낸다.
목표지점을 향해 마음(ego)은 한편으로는 쫓아가느라고 바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설정한 프로그램(생각)에 쫓기는 형국이 (形局) 된다.
이와 같은 목표를 세우면 구체적이지 않아 발심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습니다.
목적의식에 사로잡히면 그로 말미암아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 무의식적 사무적이 되어 깨어있지 못하여 삶의 순간 순간을 놓쳐버리게 되어
생각을 위주로 사는 삶은 목표지향적이어서 초조하고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그리하여 삶은 지겨워지고 욕구불만 상태가 지속됩니다.
자기의 입장만 거듭 주장하고 변명과 합리화만 되풀이하여
이고가 몰입을 (沒入) 통하여 도피행각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을
몰입문화에 (沒入文化) 빠져 살면 삶의 전면에서 밀려나 허전하고 공허한 (空虛) 따라지 인생이 되어 삶으로부터 소외되므로 (疏外)
몰입문화에 (沒入文化) 빠져 부평초처럼 (浮萍草) 허우적 거리며 빠져서 떠내려가고
경계에 빠지면 일시적으로 감각이 축소되어 자기 몸을 상실하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망각하게 되어
생기와 활기가 떨어져 몸은 괴로워지고 마음은 권태로워진다.
마음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몸 전체를 대중잡지 못하고 몸의 일부만 간헐적으로 감지하거나 몸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머리를 감각하다가 보면 머리 아랫부분을 놓치고 손을 감각하다가 보면 발을 동시에 감각하지 못하여 몸 전체를 감각하지 못하니
앞의 나와 뒤의 나 안의 나와 밖의 나와의 사이에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지고
왜 몸이 아픈가? 돌아봄을 했는대 왜 안 낫지? 안되는 건 아닌가? 되긴 되는가? 이러다가 죽을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끼어 들고 간섭하는 것이고
나를 나의 몸이나 마음과 동일시하는 순간부터 꿈은 시작되었다.
실제로는 마음(생각)이나 몸(물질)이 우리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심신이 질서를 잃고 헤매거나 아플 때가 문제이지
몸따로 마음따로 노는 것이 분열이고, 갈등이고, 상실이다.
몸과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지 않고 다스리지 않아 몸과 마음의 주인노릇을 하지 못하다 보니 자각력을 잃고
끝까지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충족시키는 일 입니다.
자기의 마음과 몸을 자기로 착각하기에 이르렀고 어언 자기는 마음이나 몸의 종이 되었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해소하는 메뉴얼이 사람에게 있건만 알지 못하고 쓸 줄 몰라 마음병 몸병에 시달리며 괴롭게 삽니다.
영체와 육체의 조화와 (調和) 균형이 (均衡) 무너져 둥근 성품인 본성을 (本性) 잃어 모가 난 성질 기질 체질이 되어
마음과 몸 둘로 분열되어 (分裂) 언제 어디서나 찢어지는 고통이 (苦痛) 있습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놀던 지금까지의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삶을
허무감 (虛無感) 공허감에 (空虛感) 시달리다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이 사무칩니다.
구심력을 발동하지 않으면 흐트러지고 맙니다.
양심의 속삭임을 듣지 않고 거부하며 살다가 보니
몸과 마음이 편하고 싶어 하면서도 편해지는 법을 알고자 노력하지도 않고
몸동작에 빠지면 감각이 오그라들어 어두워지고 지겹고 답답해집니다.
서열과 항열을 모르고 무시하여 백방으로 몸의 주인노릇을 추구하다가
몸에 힘이 쏠리지 않아서 몸에 힘이 빠져 편안합니다.
몸은 항상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만 마음이 지금 여기를 떠나 과거 아니면 미래로 떨어져 나갑니다.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어 좌절감만 (挫折感) 깊어질 따름
책읽기를 통하여 잠이 오고 읽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살림살이를 행함에 무척이나 힘이 들다가
식사하면서 다른 생각에 빠진다거나 다른 장소로 마음이 가지 않게 됩니다.
소아는 몸을 부리고 쓰는 부담감과 중압감에서 놓여나
몸에 사로잡혀 몸을 자기로 착각하여 몸종 노릇을 하며 살아갑니다.
약도 없고 처방도 없어 체념하거나 포기하면서 대책없이 병신의 몸을 어쩌지 못하여 지옥고를 받으면서 삽니다.
몸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을 외면하여 불통이 되어 몸과 마음을 져 버립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롭기 때문에 공부합니다.
마음의 아픔 근심 걱정 불안 공포를 원수로 여겨 보기 싫어하는 바람에
인간의 숙명처럼 (宿命) 여겨지던 몸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이라는 고통을 (苦痛)
외로움, 서러움, 그리움, 두려움, 괴로움 등 마음의 병과 몸의 아픔을
통증과의 싸움으로 기력만 낭비되고 생기가 떨어진다.
이 아픔이 싫어 몸에서 떠나 놀이에 빠지고 일에 빠져 잠시 잠깐이라도 아픔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픔에 대한 진실을 감각하기를 거부하고 저항하고 도피하여
몸의 통증을 일일이 감각하기가 지겹고 싫어 몸의 감각을 끊고 단독적으로 생각을 발하는 바람에
오른손잡이는 습관적 무의식적으로 오른손만을 쓰고 왼손잡이는 왼손만을 주로 쓰므로
몸이 아픈 기미가 나타나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성내거나 질타하지 않고
생각을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행동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무능이고
몸의 통증에 대하여 마음이 안절부절하지 않고 안정이 되어야
몸이 아프면 아픔을 감각하는 것으로 치유하지 못하고 왜 몸이 아팠는지를 생각으로 따져 답을 내고 알아내려고 합니다.
아픔 앞에 짜증을 내지 않고 신음 (呻吟) 소리를 내지 않는
몸이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바뀌어지지 않고
아픔만을 보고 느끼지 아프지 않음을 보고 느끼지 못합니다.
몸가는 데 마음이 함께 하지 않았고 마음가는 데 몸이 함께 하지 않아 몸 따로 마음 따로 놀아 자기를 놓치고 살았기 때문이다.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할 때 시비논란이 일어나면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좌나 우쪽으로 기울어지면
몸이 식어 오그라들어 아프면
몸이 피로하여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몸을 쉬어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못마땅하거나 언짢은 일이 없으니 징징거리지 않고 군정거리지 않아서 투덜대거나
자기는 남의 일에 끼어들고 간섭하고 억압하지 않는다고 자기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면서
무료하거나 지루하거나 심심할 겨를이 없이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을 지내므로 이벤트를 마련하여 자기를 위로하고 즐기려는 욕구불만 상태에 빠집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에 머물지 않고 멀리 계신 부모님께 가족에게 친구에게 도반에게 안부인사를 자발적 능동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었다는 상이 없고 유세가 남지 않고 공치사가 없습니다.
어디엔가 무엇인가에 빠져드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삼매라고 착각합니다.
당장 써야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고 막막하여 무엇을 쓸지 자신이 없고 고민이 되어 포기하게 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이 없습니다.
시비이해를 (是非利害) 가릴 줄 몰라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로운 삶을 사는 것을 어리석다고 합니다.
노동에 시달리면서 대립 갈등 투쟁의 소용돌이에 허우적거리는
문법이나 논리의 틀에 따라가므로 형식적이어서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여
문제에 당면할 때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순간을 맞이할 때 그 상태를 싫어하고 기피하고 도피하는가?
자기의 신념이나 결론에 의거하여 나오는 생각의 언어
오랜세월 동안 길들여진 생각에 의존하고 생각을 동원하는 버릇
깨끗이 닦지 못하여 업이 쌓이고 미련과 후회와 두려움과 갈등이 남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보고 산전수전 (山戰水戰) 겪어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궁리가 떠오르지 않는
문답법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받아들여
이 의발은 신(信)을 표하는 것인대 완력으로 다툴 것인가?
부모와 자식이나 동기간이라 (同氣) 할지라도
물질만능의 사회, 과학기술 만능의 사회로 치우친 인간과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외면적으로 물질적으로는 풍요해보여도 내면적 정신적으로는 허전하고 가난합니다. 거기에는 도망자의 비애와 고달픔과 두려움과 초조함이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하리라는 착각을 버리지 못한다.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 대립 갈등 투쟁을 벌이며 물질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 괴로움을 자초하며 살 수밖에 없다.
소유욕도 사라질 것이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궁핍감과 부족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물질은 풍요하나 심신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답보상태이며 (踏步)
사람들은 미래기획이니 정책이니 하는 말에 매료되어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목표가 이루어지기까지의 전과정은 목표가 이루어지기를 꿈꾸면서 기다리는 초조함과 지루함으로 점철된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죽음이 예고없이 밀어닥칠까봐 노심초사하던 (勞心焦思)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자기의 점괘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분열은 마음의 서두름이고 마음의 급함이고 마음의 욕심이고 마음의 목표지향 일변도로서 몸이 처한 지금 여기의 과정을 저버림이다.
미래를 유추하여 기대를 걸고 행동하면 미래는 모르는 것인지라 판판이 낭패를 보고 어긋납니다.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비젼이나 정책 따위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기대 따위에 마음을 부심하지 (腐心) 않는 사람이라야 봄이 온 사람이다.
무작정 움직이려면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어 꼼짝달싹 못합니다.
생각으로 미래의 행동을 미리 결정하면 그것에 구속을 받아 부자유하고 힘들다.
미움과 사랑은 관념적으로 보면 정반대이지만 실지로는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는 절친한 사이다.
미움을 닦지 않은채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속이 상하고 울분이 일어나서 그 사람에게 열불이 일어나고 미워하는 생각이 자꾸만 솟구쳐 일어나는데
자기도 꼬집어 뜯고 물어뜯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고 깨달아
그렇게 되면 그러한 감정은 은폐되거나 잠재되어 두려움의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
천하를 얻어도 얼이 빠지면 자기를 보존하지 못하고 자기를 잃어버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얼간이 입니다.
고요하고 편안하여 전전긍긍하지 (戰戰兢兢) 않고
기다림은 현재에서 미래를 희구함 입니다.
내가 두 손가락으로 치고 있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感興) 없이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바쁘다고 하여야 정상적인 삶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없다고 대답하면 비정상적인 삶으로 간주합니다.
현대인은 바쁜 가운데 휴식을 원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생각, 감정, 느낌) 비치지 않는다.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여행을 갔다가 좌절에 빠진다.
정신기운이 온통 밖으로 향해 있어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돌아보는 힘이 약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마음에 끌려다닙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외부지향적인지라 자기의 몸과 마음의 동향에 무의식적이고 무감각하여
밖으로 싸우려고 하는 마음
몸 밖으로 향한 시선을 돌려 밖을 보면서도 안의 몸의 상태와 움직임을 감각하는 데 한눈 팔지 않고
밖을 보면 안이 보이지 않고
반복하기 싫어하면서 공부 잘하고 일 잘하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듯 갑자기 말이 꽉 막히고 닫혔을 때
밤에 자면서 꿈을 꾸지 않으려면
남에 대한 배려가 (配慮) 부족하여 남을 이해하기 (理解) 어렵고 고작 오해하기 (誤解) 십상입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지 못하여 이기심과 독선과 아집으로 분열하여 갈등하고 다투고 싸우는
아내에게 기대는 편집증이 심하고
계약을 이행하라고 추궁하고 감시하고 따진다.
선입관 고정관념 집단의식으로 선과 악이라는 틀을 갖고 있으므로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고 벌을 주고 받는다.
시대나 지역에 따라 형성된 과거의 전통이나 윤리도덕으로서 하나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 역시 실지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의식의 스크린에 금생의 지식이나 정보가 계속 뜨고 지는 이상
획득한 지식이나 정보는 세월이 감에 잊혀지고 소멸될 운명으로
머리가 텅비어 번뇌망상은 없는데도 어쩐지 허전한 것은 웬일일까?
가상의 세계에 중독이 되면 감각이 죽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삶의 진정한 기쁨을 맛보지 못하여
번뇌망상이 생기고, 자책과 후회가 생기고,
둘로 벌어진 입장차이를 하나로 모아 통할 수 있고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호흡만 알지 숨이 멈추어 숨이 죽어있는 자리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 변화가 두려워 번뇌망상을 피우면서 괴롭게 살아간다.
병이 없어야 건강하다고 믿는다.
주어진 약을 복용하다보니 영락없는 환자가 되었으며 어느덧 인명은 (人命) 재천이라는 (在天) 식으로 의지가 약화되어
보기 싫다, 듣기 싫다는 감정을
보긴 보건만 희미하고 멍청하여 잡히지 않는다.
누가 보고 싶고 그리워 안절부절 못해지면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여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보는 나가 있으면 색깔과 모양에 끌리게 되고, 듣는 나가 있으면 각종 소리에 끌리게 되고
눈으로 모양과 색깔을 보는 동안 귀로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아직도 보는 나와 보이는 나로 벌어져있기 때문에
보기는 보되 무덤덤하여 감응이 일어나지 않고
우리는 사물의 한 면인 현상만 보고 알뿐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은 보지 못합니다.
종교의 본질은 놓치고 형식만 무성하다.
본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당장 춥고 배고프고 서럽고 무서워질 수밖에 없다.
본심이라는 말은 알지만 실지로는 본심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므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으로 호도하여 (糊塗) 사회문제로 부각조차 (浮刻) 되지 않다가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을 것입니다.
심리적인 부담이나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얻기 위해 파이팅하라는 주문과 압력을 받아 찌들어있는 것이 욕심입니다.
부모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따지고 드는 것은 잘못이다.
자기는 부모님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음에도 자기 자식에게는 잔소리를 합니다.
부부관계는 계약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크게 보아야 할 때 작게 보아서도 안되고
미래를 상정하여도 (想定) 서로 차지하려고 대립 갈등 투쟁하면서 서로 싸우기 마련이니
일단 싫다는 감정이 일어나거나 그르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갈등이요 고통이다.
남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파장을 무의식적 지속적으로 발하여
싫은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데 어떻게 좋다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부정적인 한 생각을 돌아봄으로 지우고 비우는 데 만족하고 그쳐서는 안 된다.
마음이 부정적인 한 생각을 내면 마음이 흐트러지면서 몸의 자세도 무너져 일심, 집중력이 유지되지 않는다.
항상 슬픔과 탐욕과 불안과 분노의 파장을 일으키면서 거부하고 저항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에너지장에 사는 최하의 수준.
부정적인 소리가 나오거나 약한 소리가 나오는 일이
부정적이고 의심에 찬 마의 세력을 즉시 항복받으면서
혼돈과 교착상태에 빠진 부정적인 생각을 다스리려면
거부와 저항을 일삼는 부정적인 생각
어렵다, 안된다라고 하는 부정적인 한 생각에서
상호보완적인 목적으로 만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은 반쪽에 지나지 않으므로 자족하지 못하여 불평과 불만이 야기되고 만다.
부족하여도 부족한 바가 없어
남을 부질없이 평가하는 언사를 일체 하지않는 사람이라야
하나는 우월감이라고 하는 떡잎으로
폭력이 (暴力) 일어나기도 합니다.
분노가 섞인 소리
성질이 나옴을 사전에 돌아봄, 감각으로 파악하여 성질을 사전에 차단하여 (遮斷) 성질을 부리지 않을 수 있는
불기운이 상승하여 (上昇) 생기는 분노조절 (憤怒調節) 능력이나 (能力) 증오하고 (憎惡) 미워하는 마음
밖으로 분노를 방출하려는 욕구를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하는 조짐이 느껴졌으나
병약하고 늙으신 부모님을 불쌍하다고 보고, 지체부자유자를 불쌍하다고 보고, 병든 사람을 불쌍하다고 보고, 거리의 거지를 불쌍하다고 보고
대단히 거북하고 불쾌하고 참기가 어려운 생사의 기로를 (岐路) 넘어가야 하는 지난한 (至難) 일 입니다.
불쾌함이 왜 생기는 줄 몰라 불쾌함을 위로하고 보상받고자
기분이 나빠 가정이나 직장에서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기 쉽고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비참함을 일시적으로 모면하려고 합니다.
더위를 거부하고 부정하고 싫어하는 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빈 마음의 공간을 차지하고 덮어버리기 때문에
불편함에 대하여 거부하고 저항하고 도피하여 수용하지 못하므로
우리는 이러한 파장을 명료하게 알지 못한채 무작정 거부하고 저항하다 보니 그러한 파장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억누르거나 참게 되면 그러한 감정이 잠재되므로 불만이 안으로 쌓이면서 스트레스가 된다.
도피하고 방치하여 닦지 않으므로 임시미봉책에 그치고 만다.
왜 우느냐 라고 하는 말로 따라가고 대상으로 의식이 따라가서 추리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진실과 현실이 역겨워 마음이 몸을 떠나 몸을 등지면
소인은 불평불만으로 징징거리고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불평과 불만으로 야기된 갈등과 고통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기가 져야 합니다.
중심을 놓치고 주체성을 상실하여 시기질투와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흔들리므로
남이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경계를 맞으면 놀라고 언짢고 심장이 뛰지만
비몽사몽 지간에 텅빔을 깨달았다느니 빛을 보았다느니 하면서 그 순간 내 몸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어쩌다가 비슷한 개념을 찾아 간신히 말을 해도 맞는지 틀린지 몰라 자신이 없어 한다.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혼자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실지로 사람의 몸이 공중에 뜬 것으로 착각하면 (錯覺) 미신에 (迷信) 빠진 것이니
누가 자기를 선악으로 비판하면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한 자기의 반응을 당연하다고 여기어 고집을 부리고 성질을 내면서
사교를 목적으로 하거나 상술로 사람을 반기면 사람을 차별하게 되어
삶에 대한 걱정이 없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불쌍한 (不雙) 존재가 사람들인 것 입니다.
같은 줄만 알고 다른 줄을 모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은 늘 허전하여 충족이 되지 않고 외롭고 심심함의 문제, 그리움과 슬픔의 문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말을 하기 직전에 심장이 두근 두근 거리기라도 하면 고마와 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귀찮게 여기고 억압하기 일쑤 였으니
어울리지 못하여 뒤로 빠지면서 굳어지고 외톨이가 되면 고립이 되어 전체적인 분위기에 균열(龜裂)이 생기면서 분위기를 저해합니다.
사람들에게 먹힐까 여부에 연연하기 보다는
사람을 비교하지 않고, 평등하게 (平等) 대하는
가슴이 천박하고 메마르며
사람에 대하여 짜증을 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아 무관심하거나 냉랭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바라보고
속이 상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놓쳐
만나건만 만나지 못하는 피상적이고 천박한 동물적인 관계이지
사람을 지극히 미워하면 다시는 안본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대하면 좋다 싫다는 감정이 일어나고, 옳다 그르다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대인관계에서 남에 대한 단점이 부각되어 미움이 생기고 나쁜 이미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인품을 생각으로 판단해보려고 하면 이리저리 생각이 헷갈려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분의 상중하나, 나이에 따른 구세대나 신세대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으로 갈라 보지 않게 되고
부정적인 마음(미움, 원망)을
에서 끝나지 말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우월감도 없고 열등감도 없다.
관상(표정)을 보고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의식의 수준을 안다고 믿는다.
그 사람의 과거의 족적을 파헤쳐
남을 대하면서 남을 좋아하지 않고 남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나의 내면의 반응을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한번이라도 실지로 비우고 행해 본 사람이라야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두려워합니다.
사랑의 그리움에서 발로 되는 구도의 몸짓입니다.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을 찾아 헤메면서 정작 자기 몸 자기의 심장이 사랑의 화신임을 몰랐습니다.
열정적으로 타오르다가도 어느 사이에 식어지고, 시들해지고, 잊혀져 갑니다.
그래서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그것은 고작 집착이요 의존이요 이고(ego)의 자기 충족일 뿐이다.
만날 때는 좋지만 헤어질 때는 나쁩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도리어 상대를 증오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랑은 억지춘향이다.
사물에 집착하여 끌리거나
무미건조하게 보아 지루하지 않고
사사로운 이득을 도모하지 안하여
사상 이데올로기 도그마의 노예가 되어 대립 갈등 투쟁을 일으키며 괴롭게 살 수밖에 없다.
일체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등 분별심이 비워집니다.
일반적인 사실이나 상대의 의견은 무시한 채 기존의 권위에 기대어 사람을 대하거나 사태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 입니다.
핵심을 잡지 못하고 개념정리가 되지 못하여 지혜로운 말 한마디 구사하지 못하여
사적인 탐욕에 바탕하고 있다면 분명히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잠그어 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진리를 깨달으려는 구도행위나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욕망이든 거기에 빠져 사사로움을 우선하여 자기의 달란트(talent)를 구현하지 않는 것은
사치와 허영에 빠져 생활비가 많이 들고 경제문제에 시달리며 삽니다.
자기 집안의 위세를 나타내려는 사치와 허영으로 흘러
멍청하거나 산란한 마음을
한번 정권을 잡은 우두머리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여야 추방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니
모두들 살려고 하고
살아 생전에는 그러한 소원성취를 이룰 수 없다고 포기하고 (抛棄) 고작 죽어서야 천당 갈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으니
삶이 힘이 들고 고달프다는 생각이 일어나지만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로 분열되지 않고 중심이 잡혀 삶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성공을 좋아하지도 않고, 실패를 싫어하지도 않아서
우리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아 분리시켜 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공상의 (空想) 세계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꿈을 꾸는 데에서 말미암은 번거로운 상제문화에 (喪祭文化) 시달리면서도 쉽사리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죽음을 싫어하고 삶만 좋아한다.
방향도 찾지 못하고 미끄러져 힘이 들어가지지 않으면
성인들끼리는 나이가 많다고 함부로 반말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약간 거슬리더라도 물들거나 붙잡히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어서
가라면 가고 왜 가느냐고 하면 가지 못하는 것이 보통 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중간에 남의 말을 가로채고 자기가 말하기 일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자기의 말을 하기를 좋아한다.
상대방의 말에 대한 거부반응 판단 평가 심판이라고 하는 한 생각이 파도처럼 일어나 출렁이게 되면
문제는 상대방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고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주느냐 입니다.
상대방의 말이 자기 생각에 어처구니 없다라고 느끼자마자 시비를 따지고
네살짜리 아기의 질문에 막히는 것은 엄마와 아기와의 소통이 되지 않음 입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서 무의식적 무자각적으로 행하여 자기의 언행을 함에 있어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행하는
상대방을 바라보고 추하다는 생각을 하면 자기의 기분이 좋지 않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 자기의 기분이 좋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말에 대해서 무작정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자기의 버르장머리
잘못 길 든 건가 하고 망연자실하지 말고
누가 괴롭혀도 거기에 반응하여 속이 상하거나 썩지 않으면
바르게 보지 못하므로 왜곡하여 보는 것이고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고 오해가 발생하고
흔쾌히 만나줄 것이라는 기대와 예측을 하였는데 만나지 않겠다고 나오면 당혹해하거나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해가 가지 않으니 불쾌하기까지 하니
기억하고 따지면서 속상해 안절부절하는 모습 지켜보기
무턱대고 일방적으로 믿지만 말고 부득이 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고려하고 있어야 부질없이 실망을 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바른 소리를 하면 언짢아 하는 것이 두려워 타협하고 아부하는 사람
자기에게 잘 대해주지 않으면 나쁜사람 이라는 반응이 나오다가도
거짓이다는 평가가 나오면 미워하고 부정하는 감정을 발하게 되면
항복을 받아내려는 공격적인 욕구가 분출하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인지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가운데 은연중 자기를 과시하는 이고의 (ego) 교묘한 술수가 숨어있다.
싸움은 걸어놓고도 이기지 못하고 속만 썪습니다.
상대를 무시하고, 배격하고, 이기려고 하면 서로 만나지 못하여 이루어지지 않고
어떤 사람이 미워지는 순간
타인을 압도하기 위하여 내는 강한 소리이거나
오해가 (誤解) 있으면 자기도 나쁘고 상대방도 나빠 상극이 (相剋) 됩니다.
서로가 상대를 이기고 통일하려고 합니다.
남의 모습을 바로 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고 대화하는
상대를 폄하하고 미워하고 상대를 압도하고 굴복시키고 이겨먹으려는 노림수와 꼼수를 동원하는 모습
무례하게도 그렇게나 가까이 다가가 빤히 눈뜨고 쳐다보고는 뭐! 별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내뱉는 것이 아니라고!
남을 미워하거나 남과 싸우면
심기가 불편해지고 심지어는 시비와 다툼이 벌어집니다.
자기의 한 생각에 속지 않을 것이다.
공감할 때는 공감을 표시해야 되고 불만 있을 때는 불만을 표시해야 되는 겨.
예 예 하다보니 아니오 소리 하기가 어려워진다.
한자리에 있으면서 시선을 다른 데 두어 상대방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순간 혈압이 오르고 부들부들 떨리니
가슴에서 느끼지 않으면서 건성으로 나오는 소리는 진정성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주의 주장을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귀기울여 듣습니다.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말소리만 듣고 있어도 느낌이 오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상대방의 마음이 맑고 밝으면 안심이 되지만 어둡고 괴로우면 우리도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상대의 장점을 (長點) 알아보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고백을 하므로서
청군 백군으로 편을 짜 게임을 벌이게 되어 있다. 승패를 가리고 선악을 가리려고 한다.
사물의 양극단 중 어느 한쪽에 집착하고 쏠리다보니 나머지 반대쪽에 대하여 배척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중,하, (上中下) 전후, (前後) 좌우로 (左右) 분열된 (分裂) 쥐구멍 같은 어둡고 비좁아 답답한 공간
감만 있고 행동은 제대로 하면서 한동작 한동작 한마디 한마디에 대한 이치를 분석하고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바람이 지나갔는데도 계속 물결이 침이다.
생각을 몽땅 비움의 상태가 필요하고 기꺼이 그러한 상태에 돌아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느끼는 나가 있으면 무언가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할 것이며, 걷는 나는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가고 싶어 안달할 것이며
또 다른 꿈을 꾸기 위해 여기 오신 건 아닌가요?
새로운 풍경에 목말라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더이상 끌리지 않는다.
경계를 당하여 생각이 난무하면 빛을 가리어 일시적으로 어두워지는 기미가 보이면
얼마나 넓으냐? 좁으냐? 얼마나 깊으냐? 얕으냐?
오직 화가의 손길에 따라 어두운 그림이 되기도 하고 밝은 그림이 되기도 하고 차가운 그림이 되기도 하고 따뜻한 그림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되기도 하고 추한 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이나 감정이나 충동의 형태로 욕심을 부리고 채우려는 모습
일단 꿈을 꾸게 되면 자기가 꿈꾸는 줄 모른다.
번뇌망상에 빠져 자기가 자기를 괴롭힌다.
이 일을 등한히 하면 속에 쌓여서 어두워지고 답답해지고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한다.
생각과 감정의 일어남에 대한 이고(ego)의 대처방식은 싸우거나 도피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생각이나 기억이나 지식 경험을 단 한순간이라도 비우려들지 않는다.
모든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거나, 따돌리지 말고
혼침이나 (昏沈) 밝음에서 비롯된 산란심에 (散亂心) 빠지지 않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돌보고 감각하고 다스리지 못하여 동물성을 벗어나지 못하여 서로 싸우고
머리로 생각으로 살면 임기응변으로 살 수 없고
생각을 내거나 읽기에 에너지를 쓰는 데 급급하여 생각이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생각을 내기만 하고 생각을 돌아봄하지 않으면 회수를 하지 못하여 에너지가 고갈되어 스트레스가 쌓이고
생각과 감각의 관계는 상극의 (相剋) 관계가 됩니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무거워지고 답답해진다.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졸리거나 잠에 떨어지기 쉬우므로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고 갈가리 찢겨 분해되고 와해되고 문드러져
고요함은 항상 시끄러워지고 부동은 동하고 불변은 변화가 되어
생각은 욕심과 집착으로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인지라
비록 어떤 결론을 내었다 하드라도 또 다른 물음은 남습니다.
생각이 충동적으로 말하려는 욕구가
끓어오르는 생각에 휘둘려 좌충우돌 번뇌망상에 빠지고 어지러워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생각에 끌려다니는 동물성의 소리가 나온다.
생각 느낌 감정으로 만들어 대립하고, 반목하고, 질시하고, 갈등하고, 아파하고, 따지고, 다투고, 싸우고
생각의 노예가 되면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여
중심이 무너지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기울어져 조화와 균형이 깨어져 혼돈이 생기면서 우왕좌왕 표류한다.
생각으로 가상의 (假相) 시간을 만들어 희비쌍곡선으로 (喜悲雙曲線) 된 드라마를 (drama) 만들어 번뇌망상이라는 (煩惱妄想) 악몽에서 (惡夢)
좌뇌본위로 치우치게 되면 마음(생각)이 몸(감정)을 억눌러 자연스러운 파동이 일어나지 못하여 가슴이 메마르고 경직되어 얼굴의 표정도 다양하지 못합니다.
생각으로 이거다라고 어떤 결론을 내렸다고 하여도 그것은 현상인지라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잊혀지고 말 것 입니다.
생각으로 천당극락을 찾아 헤메고 방황합니다.
잡았다 놓쳤다 하는 것이 생각의 장난이고, 정신차리지 못한 것이고, 합일되지 못한 것이다.
생각으로서는 몸과 마음을 조복 받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서로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형국인지라 엎치락 뒤치락 싸우다가
감각이 무디어져 무의식적으로 몸을 놀리기 때문에
생각을 생각으로 통제하려고 하면 절대 생각은 통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에 힘을 실어주어 생각의 통제는 불가능하다.
생각으로 시비를 (是非) 하고, 말로 논쟁을 (論爭) 하고, 몸으로 투쟁을 (鬪爭) 하던 버르장머리를
한 생각을 내기만 하고 거두어 들임이 없다면 에너지는 흐트러지고 빠져나가고 분열이 되어
근심 걱정 불안 공포와 대립 갈등 투쟁이라고 하는 번뇌가 그칠 날이 없는 것 입니다.
인간의 지능을 사용함으로 골치가 아프고 번뇌망상으로 (煩惱妄想)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들이 스스로 감각의 구심력을 발휘하여 생각의 원심력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각을 알아차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생각을 앞세우고 생각에 따라 행동을 하므로 생각으로 몸을 끌고 다니시나요?
이미 감지하고 있는 자기의 느낌을 그대로 언어로 표현하지는 않고 잘 대답한답시고 시간이 걸려 생각으로 고안해내느라
우리는 생각이라고 하는 가짜의 나를 진짜의 나인 줄 착각하며 살고 있다.
잘 못쓰면 자기를 다치게하고 남들도 다치게 합니다.
제멋대로 생각을 내어 따지고 말을 하면
우리는 생각을 숭배하고 생각에 의존하게 되어 생각의 노예가 되기에 이르렀다.
과거와 미래라고 하는 허구(虛構)가 전개되어 지금 여기를 감지하는 현실적인 감각이 둔감하여
이고(ego)는 모르는 자리가 죽음이고 망하는 것으로 알아 암흑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저항한다.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을 일으켜
어떤 생각이 허위이고 어떤 생각이 진실인지를 분간하지 못하여 번뇌망상을 되풀이하면서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이어지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기의 안을 들여다보며 살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쫓아가거나 생각에 쫓기는 것이 보통이다.
생각의 작위적인 개입을 미연에 방지하고 차단하여야 하는데
생각에 빠져 생각의 노예가 되면 동물성(이중성)이 발로 되어 영성에 속한 신비를 느끼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막히고 덮혀 감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음(생각)이 정신의 광명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희미하고 어두워진 것이다.
근심 걱정 불안 공포가 있다는 것은 한 생각이 발단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의 세포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분열하는 마음, 산란한 마음, 다투는 마음을
자기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과 다투고 싸우기 마련이다.
마음(생각)이 둘로 분열하여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현실의 공간을 살지 못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꿈을 꾸며 사는 번뇌망상의 삶을 살아간다.
글을 쓰려고 하니 한 생각도 나지 않아서 못쓴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심만 좋다고 편하다고 하면
머리가 생각으로 요란하면 머리가 아프고
어리석어지고 냉냉해지고 위축되어 아프고 의기소침해지면 (意氣銷沈)
감각을 여의고 발해진 생각이나 언행은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시간적인 분열로 나타나서 가상공간이 생겨나면서 번뇌망상이 생겨난다.
참새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율법을 만들고 그 율법의 지배를 받는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는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하여 (堪耐) 덮어두고 넘어갔을 사항인데
급한 성질이 느긋한 성질로 변하고
몸 따로 마음 따로가 되어 몸과 마음이 분열되는 현상이다.
두 중이 서로 논쟁을 하기를
교학과 (敎學) 언어도단으로 (言語道斷) 감각으로 법을 가르치는 선학이 (禪學) 대립하여 여태껏 승부가 (勝負) 나지 않고 있는 바
두개의 동심원이 생기는지라 어쩐지 불안하고 미심쩍다.
약육강식으로 (弱肉强食) 서로 싸우는
음양, 명암, 선악으로 분열된 마음
한 생각 일으키면 그에 맞서는 또 하나의 생각이 생겨나 하나가 둘로 분열되면서 상대가 (相對) 되어 대립 갈등 투쟁이 끝없이 반복된다.
탁마한답시고 (琢磨) 시작한 대화가 논쟁으로 (論爭) 비화하여 (飛火) 고통의 씨앗으로 화하기 쉽습니다.
서로간에 분열하여 패거리를 짓고 따지고 싸우기를 좋아하는지라
주관과 주관의 싸움은 그치지 않고 승패도 가려지지 않는다.
동물성은 서열을 가리기 위한 폭력성이고
사람이 죄의식을 갖고 괴로워하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선악이분법으로 양자택일을 하여 희비쌍곡선이 되고
선악으로 시비하는 생각 사량분별심이 (思量分別心) 정신의 거울에 때를 묻혀 본질과 현상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여 기쁨이 아닌 무미건조한 데서 소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견하기 어려운 국면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경우 생각으로 분석하여 선과 악을 일일이 규명하는 것은
동당의 고양이다, 서당의 고양이다 라고 시비가 벌어졌기 때문에
남들과의 시비장단으로 대립 갈등 투쟁을 일으키는
선악시비를 (善惡是非) 논하는 과정에서 폭언이나 폭행을 구사하지 않고
선악 두가지로 벌어지는 마음을 한가지로 걷어잡는 일심의 실력이 있어야 사물의 핵심을 잡아 곁가지로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상공간에서의 기억과 지식과 결론에 의존하며 산다.
선입관 (先入觀) 고정관념으로 (固定觀念) 기득권을 (旣得權) 유지하려는 데서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축적하여 추상적으로 자기라는 이고(ego)를 형성하여
아무리 그럴듯한 율법이라도 (선행, 도덕률, 봉사활동) 고정관념이 되면 사람이 율법의 지배하에 들게 되어 억압과 고통을 면키 어렵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오라는 고배를 들기 마련이고
공부하여 합격한 다음 놀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난 욕구에 대하여 거부하고 저항하는 에너지 대신 그것을 구경하는 에너지로 바꾸어
마음 속으로 간음하여도 실지로 간음한 것과 같다는 식으로 동물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사람의 잘못으로 몰아붙여서는 안된다.
가상공간을 만들어 쥐구멍에 들어가 환상을 떠올리면서 정욕과 쾌락을 도모한다.
지금까지는 남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지금부터는 자기를 아는 길로 들어 서는 것 이다.
세상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고 하는 한탄과 (恨歎) 의구심을 (疑懼心) 품고
세상 사람들은 성공(승리)은 좋아하고 실패(패배)는 죽어도 싫어한다.
세월이 화살같이 지나가네 라는 생각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죽음으로 한걸음 더 나아감이 느껴지면서 공연히 마음이 우울해지니
소득의 격차가 심하여 민생이 도탄에 빠진
소리가 없는 침묵은 (沈默) 감지하지 못하는
소리가 좋다 나쁘다는 생각을 일으켜 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소리를 들을 때 괴로움을 느끼며 살고
무소식 앞에 생각을 덧붙여 꼬리를 달고 가지를 쳐서 근심 걱정 불안 공포에 빠지는 삶을
소인은 소유에 기반을 둔 쾌락을 지향하고
알아먹지 못하는 소통의 책임을 문책하여 권위로 억압하고 무시하고 경멸하기 일쑤인지라
자꾸 숨기는 게 있으면 어떻게 돼? 자꾸 쪼그라들지.. 아~ 눈치보고..
속도의 (速度) 완급에 (緩急) 구애를 (拘碍) 받지 않아 다투고 싸우는 경쟁에 (競爭) 빠져들지 않고
언어는 속내를 속일 수 있지만 표정은 속내 그대로 지어집니다.
속이 상하였다가 속이 풀리기까지 그렇게 제 자리에 돌아오는 데 처음엔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소아가 나타나 조잘거리는 소리를
아주 미세하게 속으로 짜증을 부리거나
속이 상하여 들끓을 때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죄송해요.
속이 상하고 상처받고 고통이라는 벌을 받는 것은
수행을 하려면 생활을 못하고 생활을 하려면 수행을 못하는 그런 수행은 첫걸음부터 잘못입니다.
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딱부러져 똑똑한 것을 닮으려고 하고 선호하는 편입니다.
술에 대하여 단호하고 명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모호하고 애매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하여 술을 끊지 못합니다.
공연스레 숨긴답시고 전전긍긍할 필요조차 없으니
숨을 죽이고 있으면 답답하고 불안하고 캄캄하여 안절부절 못하면
답답해지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여 생각이 숨을 쉬려는 욕구가 일어나 갈등이 생깁니다.
의지력을 (意志力) 발동하여 숨을 들이마시지 말고
우리가 쉬는 시간,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는 순간, 거기에는 어떤 욕구불만이랄까 답답함이랄까 하는 느낌이 있다.
놀지 않고 바로 공부하고 일하려고 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장기간 심술을 부리거나, 토라지거나, 변덕을 부리면서 자기를 괴롭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올 때 밀려나오고 갈 때 끌려가는 부자유하고 주체성이 없어
스트레스가 생겨 반복해서 쌓이면 분출하여 해소하려는 스트레스 증상이 생겨 괴로워 집니다.
스트레스는 남이나 환경조건이 자기에게 주면 자기가 받는다고 모두들 생각하는데
자기의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남으로부터 위로를 받아 해소하려고 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괴로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습니다.
슬픔을 나쁘다고 여기는 생각의 독단으로부터 벗어난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구도로 작동하는 바람에 지금 여기의 삶이 배제된다.
되는 것만 좋아해 안되는 것을 싫어한다.
시간 공간에 속박당하는 생각의 모드에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고 문제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시간의 이원성으로 찢어져 쫓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계속 죽음이 두려워 일과 놀이를 끊임없이 추구함으로써 죽음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시간이 가면 죽는다는 이고(ego)의 막연한 변화에의 두려움과 슬픔이 깃들어
남이 자기보다 나아 보이면 배 아파합니다. 그것이 시기 질투심 입니다.
시기, 질투, 부러움이 해소되지 않고 계속 쌓이면 자존심이 열등감이 됩니다.
시기질투에 맨날 싸우는 소리입니다.
과거로 미래로 헛걸음질 하느라 분주하니 한순간도 마음이 고요할 날이 없다.
시끄러운 소리에 괴로움을 겪지 않습니다.
소리를 피해 귀를 틀어막아도
시대조류나, 유행어 투의 천편일률적인 딱딱한 소리가 나오고
시험 답안지에 그대로 출력하여 옮길 수는 있으나 시험이 끝나는 즉시 날아가고 만다.
신도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르게 일러주어도 받아들이기는커녕 거부하고 저항하고 화를 내고 원수로 대합니다.
놓친 순간 후회하고 자학하지 말고
꾸며서 내는 소리가 줄어들고 소박하고 진실하게 나오는 소리가 늘어갑니다.
생각의 모드에서는 일어설 때 다리를 들고 일어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애를 상대방에게 둘러씌운 이미지일 뿐
언제나 생각을 앞세워 생각이 그려낸 씨나리오대로 연기하고 (演技) 있으니
잡아먹힐 염려가 없는데도 잡아먹힐까봐 두려워하는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허무하기만 하여 물처럼 바람만 조금 불어도 물결이 치고 흔들리고 야단이다.
가정문제, 경제문제, 회사문제 기타 등등에 대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내 놓아야 돼.
현장을 보지 않고 생각이 가상공간에서 추상적으로 그림을 그려 실지 현장에 맞지 않아 적용할 수 없는 이론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세간에서는 성공을 좋아하고 실패를 싫어하는 까닭은 실패시에 하나의 자기가 둘로 분열되어 자기가 자기에게 주는 벌이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몇번 시도하다가 자꾸만 놓쳐버리게 되면서 안된다 하고 포기하거나 중지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것 자기에게 불편한 것은 배제하고, 외면하고, 따돌리고, 도피함이다.
자기가 싫어하고 아픈 것에 대하여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아서 자기의 내면에 대하여 무의식적이 되어 자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우울증이나 학교폭력이나 왕따문제 자살 등의 문제 앞에서 속수무책 입니다.
각(角)이 지고 모(矛)가 나 부정적인 (否定的) 인간이 되고
심신의 컨디션이 아주 나빠져서 마음이 우울하고 몸이 나른하고 아플 때
대부분의 시간을 시들하고 무료하고 심심해하며 그 많은 시간을 잡념으로, 번뇌망상으로 채우며 괴롭게 살고 있습니다.
심심하고 답답하여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면서 위안꺼리를 찾고 즐길꺼리를 찾아 서성대던 사람이
평지길은 순탄해서 제일 좋다는 길이지만 한참 걷다보면 그것도 지루하고, 재미없고, 짜증나는 길이다.
외로움을 잊으려고 끊임없이 친구를 찾고 애인을 찾고 오락이나 게임이나 즐길거리를 찾아 서성대고 추구한다.
심심풀이 땅콩식으로 한 생각을 쫓아 가는 것은 임시미봉에 그쳐 평생 심심함에 쫓겨다닌다.
심심함을 느끼는 이고(ego)를 위로하고자 재미를 찾아 게임이나 오락에 몰입하는 길
깜짝 놀라 심심하다 죽기싫다는 느낌을 통하여 반사적으로 진공으로부터 도망가 놀이나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자기의 심심함을 달래보거나 달콤한 위안의 말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여 호기심을 채우는데 그칩니다.
자기의 심심함을 달래 줄 사람이나 행사나 일이 필요하게 된다.
일단 이러한 욕구의 소용돌이가 일어나 휩쓸리게 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심심함을 달래주고 욕구불만을 풀어주기 위해 끌려나가지 않을 수 없다.
큰아이가 심심해 못견디는 나머지 동생에게 놀아달라고 건드리는 것
문제는 심심하다는 느낌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저항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나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심심함을 달래달라는 욕구가 강열하여 안정을 잃고 두리번거리고 서성대기 시작한다.
싸우려고 욱! 하고 치밀어오르는 생각이라는 불기운
한편으로는 경쟁하고 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타협하고 협상하고 화해하면서 이합집산을 (離合集散) 거듭한다.
평소에 스트레스가 쌓여 억압되었던 것이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는 순간 폭발되어 신경질적인 언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 화 입니다.
초대하지도 않았건만 어제의 장면이 불쑥 나타나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는 것을 말하려고 하면 도리어 막히게 되므로
아는 사람에게만 말로 인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상의 모습만 보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일지라도 금방 싫증이 나서 눈을 돌리고 싶은 까닭은 무엇일까?
하나를 운용하지 않고 제로만 구하고 지키려고 하면 안된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것을 먹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며 사는 수라장이다.
몸과 마음에는 병고가 그치지 않는 두렵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으레히 그럴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운명으로 치부하며 삽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한 생각 일으켜 아파하는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는지
아픔을 싫어하고 아프지 않음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병이 낫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몸을 까마득히 잊고 밖으로만 쏘다닙니다.
아픔에 움츠리지 않고
고쳐 볼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등감과 수치심과 슬픔과 불안과 분노의 에너지 파장을 일으키며 괴롭게 살고 있다.
아픔에 대한 무감각은 감각이 아픔을 싫어하여 몸을 떠났기 때문으로
심리적으로도 아픔을 기피하고 거부하고 저항하기 때문에 아픔은 배가되고 증폭이 됩니다.
생각으로 보면 아픔은 영원할 것 같고 안식은 순간인 것 처럼 여겨집니다.
악몽에 (惡夢) 시달리지 않고
밖을 보면 안을 놓치고, 안을 보면 밖을 놓친다.
거리감이 존재하므로 항상 그리움, 외로움, 답답함, 허전함의 상태를 살고 있는 것이지요.
적당히 안전하게 눈치 보고 타협하면서 자기의 진실과 허물을 숨기면서
막연하게 믿어왔던 그 하나님이요 신(神)이었다는 사실을
시간적으로 앞생각과 뒷생각으로 공간적으로 안의 자기와 밖의 자기로 이원화되어 분열상태입니다.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게 되어 망연자실
능선길은 확트인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으나 한편으로는 계곡길의 아늑한 분위기를 맛볼수 없어 생각의 이원성에 걸려 쉽사리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양자택일의 생각이 돌아가 답답하고 괴로워지면
생각으로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어두움 암흑을 싫어하고 화안함 광명을 좋아하고 모르는 것을 싫어하고 아는 것을 좋아하여
어두움으로 기울면 혼침에 (昏沈) 빠지고 밝음으로 기울면 산란에 (散亂) 빠집니다.
어두워 더듬고 부딪치고 다치는 가운데 근심 걱정 불안 공포가
밤에 눈을 감고 자려고 하면 빛의 부재인 암흑이 싫어 잠자기를 싫어합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마음을 밝게 만들지 못하여 괴롭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작심을 하지만 삼일을 버티지 못한다.
내가 왜 이렇게 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내가 성공적인 인생을 이끌 것이냐?
경계를 당하여 몸이 아프고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어렵게 말하고 쓰기가 쉽고 쉽게 말하고 쓰기가 오히려 어려운 법이니
억지로 하면 말은 듣지만 스트레스가 쌓여서 공부나 일이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성과도 거두기 어렵다.
돈이 있어도 거들먹거리지 않고 돈이 없어도 주눅들지 않아
없는 문제를 스스로 일으키고 스스로 벌주고 괴로워하는
울그락 불그락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므로
자기 자신이 만법의 노예상태이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마음의 답답함을 풀어볼 길이 보이지 않고 찾아볼 수 없는지라
어떤 사람에 대하여 여럿이서 흉보는 자리에서는 그 사람의 단점과 약점만을 말하지 않고
여행은 일이 되어 지겹고 힘들고 지루하다.
구경 가면서 구경할 줄 모르고 도착해서도 구경할 줄 모르고 돌아오면서도 구경할 줄 모르니
여전히 하늘에 삿대질하는 버르장머리 하나 고치지 못하니 안되는 공부가 아닌가 하고 은근히 원아에게 원망하는 사람까지도 있으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아기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내적 심리적으로는 언제나 갈등이 남고 부족하고 한계에 봉착한다.
자기의 충동이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려고 하면
연인이든 부부이든 사랑의 시기 질투심이 제일 강하고 무섭다.
연장자나 상관을 우대한답시고 불편하게 안으로 앉기를 안내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구나 영웅호걸이 (英雄豪傑) 되기를 바라는 선입관이나 (先入觀) 고정관념을 (固定觀念)
숨을 들이켰다고 간주하여 숨을 들이킴으로 숨그치기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간주하여
그 법에 매이면 부자유하고 불편함으로
오늘 무슨 일을 할까? 성과는 있었는가? 제대로 살았는가? 라는 일체의 사량분별이 (思量分別) 사라져 압박과 부담으로 부터 해방되어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습니다.
장구한 세월동안 노력하고 준비하였는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정체되어 낭패될 지경에 이르러
100세 시대를 맞아 좋다구나 할 것이 아닙니다. 30년 더 산다는 것은 30년 더 고생한다는 것이니까
움직이지 않고 오래 반듯하게 앉는 것을 목표로 삼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만성피로 증후군에 시달리면서 병인 줄도 모르고 지옥고를 겪으며
감각이 무디어지고 닫히게 되어 의식의 공간이 어두워지고 좁아져 답답해지고 괴로워진다.
참 안 고쳐져요, 선생님
인간은 그동안 몰입의 (沒入) 생활에 길들여져 있으므로
한번도 문제를 (問題) 제기하거나 (提起) 해결하려는 (解決) 시도가 (試圖) 지금까지 전무하였다고 (全無) 할 것
학창시절의 절친한 친구라도 사회 생활을 오래 한 후 만나면 서로간의 에너지장이 다르므로 소원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평생토록 같이 사는 부부지간 (夫婦之間) 마저 내가 어떤 사람과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불안 공포는 과거를 참조하여 미래를 생각할 때 일어나는 망상입니다.
서로간에 오해가 생기고 불신이 생길 때 한 사람은 추궁하고 한 사람은 벼랑 끝에 몰리는 순간
들리는 말을 곡해하고, 오해하고, 따지고, 비난하지 않고
옳다 그르다는 선악시비 이분법으로 판단 평가 심판이 일어나기 쉬우므로 마음이 분열되고 흐트러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져
그 완전성이라는 잣대로 자기를 심판하고, 자학하고, 남을 심판하고, 비난한다.
허전하고, 심심하고, 답답하고, 외로운 있는 그대로의 자기의 본질을 두려워하고 기피하고 외면하였던 것 입니다.
외롭다는 것은 내 곁에 나의 친구나 애인이 없어 느끼는 괴로움이다. 그래서 나를 알아주고 반겨주고 인정해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움 외로움 허전함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한 생각을 발동하여 밖으로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과정을 택합니다.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 않고, 허무감에 떨어지지 않는다.
낮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경험하지 않고 따돌리거나 외면하면 밤에 꿈의 형태로 또다시 떠오른다.
사람을 볼 때 잘났다 못났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몸을 제대로 부리고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상에 빠져 무지몽매해지고 (無知蒙昧) 남들과 시비하는 바람에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집니다.
몸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대상을 보고 들으면서 동시에 자기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가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대상을 비교분석 (比較分析) 하거나 유추하거나 (類推) 지레짐작하는 생각의 힘이니
현상의 자기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적나라하게 보았다.
신에게 복락을 빌고 부처에게 절만 하면서 늘봄의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외부에 대한 지식은 많아도 육감, 영감이 계발되지 못하여 자기를 알지 못하고 남도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신(神)과 불(佛)이라는 외부적인 존재를 믿고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외공만 닦아서는 소아의 노예 상태에서 오는 공허감과 외로움과 부자유에서 오는 갈등과 속박감과 결핍감을 해결할 수 없다.
재색명리에 성공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 아니다.
돈이 생기고, 애인이 생기고, 이름을 날리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돈이 있느냐 없느냐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계급과 서열을 중시한다.
돈이나 지식이 없다가 있고, 지위가 낮다가 높아지고, 명성이 없다가 있어진다고, 당신이 달라집니까?
좌절과 괴로움과 슬픔에 젖어 미족함에 괴로워하는
욕구불만으로 인하여 이고(ego)가 허전하고 답답하여 한이 맺히고 울분이 쌓이면
약자의 비애와 모멸감과 패배감이 내면에 남게 된다.
욕심과 좌절의 연속인지라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비해
욕심에 이끌려 번뇌망상을 일으키고 괴로움에 시달립니다.
한번이라도 지는 날이면 끝없이 끌려 노예가 된다.
욕심에 팔려 외부로 밖으로 정신이 나가
상대를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얕은 이고(ego)의 수작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리라고 하는 바다의 표면만 본다.
상대를 깔보고 군림하려 하거나 역부족이다 싶으면 상대를 회유하거나 아양을 떨어서라도 자기의 안전과 위치를 고수하려고 합니다.
우왕좌왕 (右往左往) 서성거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으므로
늘 우울하고 답답하여 무료와 (無聊) 권태와 (倦怠) 소외감에 (蔬外感) 시달리다 보니
우울하고 괴로운 감정이 들 때에 그러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입니다.
답답하고 갑갑할 때에
분노를 (憤怒) 내지 않을 수 있는
열불이 치솟아 속이 타버리는 괴로운 경계를 맞이할 때
욱하는 불기운으로 분노의 감정을 표정으로 나타내면서 분노가 서린 고성으로 (高聲) 비난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는
운용하는 기술을 터득하면 별도로 정체성 자리를 깨닫지 않아도 된다는 오류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울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 풍토 속에서 자라
울음을 잃어버리고 눈물 하나 흘릴 줄도 모른다.
움직이기 싫은 감정이나
나 보다 못한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이고 이용하여 군림하려는
공허감에 안절부절할 때
아무리 재색명리를 얻어도 도망자 신세인지라 근심 걱정 불안 공포를 면치 못합니다.
바르게 말하지 못하면 고양이 목을 벨것이다!
생각모드의 사람은 꽉 막혀 어쩔 줄 모릅니다.
물에 빠지면 무작정 숨을 쉬려고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상의하달만 (上意下達) 되고 하의상달이 (下意上達) 안되면 상이 하를 억누르고 부리는
막상 닥치면 목숨을 보존한답시고 몸의 지성을 (知性) 믿지 못하고 마음이 끼어들어 다시금 목숨의 호흡이 되어
용도 없고 못도 없구나 하고 거드럼을 피우다가
얼굴이 팔려 가는 곳마다 자기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면 행동에 제약을 받아 불편하고 부자유 합니다.
판단 평가 심판은 윤리도덕관에 따른 고정관념이나 선입관 때문이다.
자기의 행동이 그 생각과 (윤리도덕이나 신념) 일치되는지 여부를 끊임없이 대조하게 되고
거기에서는 대립 갈등 투쟁만이 있고 기껏해야 일시적인 타협과 협상만 있을 뿐 완전한 의견의 일치가 있을 수 없다.
따지고 다투고 짜증내고 울부짖지 않고
상대를 적이나 원수로 간주하지 않고
제물을 어떻게 진설하느냐 등의 자질구레한 문제로 설왕설래하고 (說往說來) 다투기 예사다.
제사 본래의 뜻은 간 곳 없고 형식만 남아서 그렇다.
의문이 걸리는 순간 육체를 놓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궁리와 검색을 통하여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당장 무기공에 (無記空) 빠져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어 속이 상하고 괴롭고 찌그러진다.
부정적인 한 생각이나 의심에 멱살잡히지 않고 끌려다니지 않아
자리에 누워지내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가던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면서 갈등을 되풀이하므로
남에게 이기려고 하고
아픔에 대응하는 방식은 싸우거나 도피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
이리갈까 저리갈까 결정하지 못하고 꼼짝달싹 못하는 자기 모습 알아차리기
이론적으로 그 어려운 개념정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책으로는 봄나라 책을 다 이해하고 말하고 글로도 잘 표현하는 경지에 이르러도 일상생활 가운데 몸 돌아봄 마음 돌아봄으로 수행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라고 하는 이름, 성별, 나이, 전공, 직업, 지위, 육체 등을 나라고 여기며 사는
눈으로 사물을 보노라면 이름을 떠올리거나 거기에 대한 지식을 생각지 않고
하나의 존재에 이름을 붙여 두가지로 분열시키고 추론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일어난 생각에 대하여 좋아하는 생각을 낸다거나 싫어하는 생각을 내게 되면 생각이 줄기차게 지속되어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이별에의 서러움, 만남에의 그리움, 재회에의 기다림
이별의 서러움 그리움이 서리고 서려 친구를 찾고 연인을 찾습니다.
그리하여 양극단 간에 대립 갈등 투쟁을 일으키며 괴로워 합니다.
헤어진 자기의 반쪽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으로 (熱望) 그리움에 사무쳐 마음이 몸을 떠나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면서 애타게 찾기도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남들이 자기가 건립한 이미지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데
왜 그러한지 몰라 사주팔자로 돌리거나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일심의 힘이 있어야 득실에 끄달리지 않습니다.
이익에 연연하여 생각을 짜내면 진실과 멀어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보다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모른다는 진실의 말을 토로하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갑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안 것으로 그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심심함이란 사물을 생각(지식이나 기억)을 통해 볼 때 생기가 죽고 감각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게 되는 순간 자기의 생각이 끼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의 소리에 애착하여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바른 뜻을 알지 못한 채 무시하거나 (無視) 방관하여 (傍觀) 숨을 쉰다는 말의 바른 뜻에 무감각하고, (無感覺) 무의식적이 (無意識的) 되었던 것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패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결론에 봉착할 수밖에 없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동시에 이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모두 안녕이라는 말을 관습적으로 말하고 들을 뿐 안녕이라는 말의 속뜻에 대하여 깊이있게 자각하지 않고 건성으로 하는듯 합니다.
인생은 (人生) 고해라는 (苦海) 부정적이고 (否定的) 염세적인 (厭世的) 인생관에서 (人生觀)
인정에 끌리지 않는다.
자기를 돋보이게 잘 하여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흔들리고 떨려서 오히려 잘 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음을 감안하면 결론을 내리지 않아
우리는 보통 일이나 놀이에 빠져 살다가 이따금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이 드는 죽음을 목격한다.
잘 읽어야겠다는 생각마저 지우고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를 내어야 한다.
일할 때는 놀지 못하고 놀때는 일하지 못한다는 선입관과 고정관념에 매여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있는가? 없는가?
일만하고 공부하지 않는 사람도 그르다.
일에 앞서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이 있고 담대해지고
망중한이 없는 바쁨은 기필코 쫓기고 빠져 살므로
사사건건 완결시키지 못하여 갈등과 여한이 남게 마련입니다.
공을 들이지 않고 대충대충 하면 할수록 기운이 빠져 이내 지치고 만다.
무의식적, 습관적으로 하거나 적당히 대강대강 마지못해 하는 심보를 말한다.
속단심으로 전진하려고 서두는 바람에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불평불만으로 거부하고 저항하는 이고를 (ego)
군중들은 단박 하야하여 추운데서 강행하여야 하는 고된 집회가 끝나기를 바라지만
뒤로 미루고 요리조리 핑계를 댈
일이나 놀이가 없는 순간이면 자기의 몸을 감각할 줄 몰라 심심해지고 답답해지고 괴로워집니다.
우리 책이 여러날 나가지 않으면 왜 안 나가지 하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물들기 십상이다.
일하는 부담과 (負擔) 고통에서 (苦痛) 벗어나
앞생각과 뒷생각, 지금 생각과 나중 생각이라고 하는 마음의 분열이 일어나 일이 즐겁지 못하고 괴롭습니다.
오락이나 스포츠나 게임에 빠지지 않아야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잠시 미루어 두고 하여야 한다.
외로워하는 마음, 짜증내는 마음, 답답한 마음, 심심한 마음, 안절부절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속상해하는 마음까지도 미워하지 말고
생각의 이원성인지라 있다면 있다에 걸리고 없다면 없다에 걸려 부자유합니다.
자기가 감각의 장애인인 줄 몰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등한하고 거부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처음에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들여다 보노라면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잘 보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자기가 본 것은 틀림없고 자기가 생각한 것은 틀림없다는 아집과 맹신에서 고집이 나오고, 주장이 나오고, 논쟁이 나오고, 투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소상하게 (小詳) 밝히지 못하여 소통이 (疏通) 되지 못하고 불통이 (不通) 되면
기껏해야 남의 것을 인용하거나 모방하여 말을 하는 것이므로 엄격히 말하면 자기의 소리가 아니다.
자기에게서 동물성이 발로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감각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동물성을 다스리지 못하기에
자기와 관련된 비리를 (非理) 이야기 할 때 책임은 지지 않고 자기는 빠진 가운데 남의 말하듯이 하는 화법인 (話法) 바
한다고 하는 사람도 하는 체하고 하는 척하고 하는 걸로 착각한다.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안다.
머리가 아파요
신경과 관심이 안으로 향하는 것은 삶의 포기로 여겨지고 망하는 일 또는 심지어 죽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안으로 파고들려고 하면 생각이나 의문을 일으켜 교묘하게 따지거나 거부하여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밖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상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자기의 내면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두려웠지만
외면적으로 체제와 제도와 법률을 계속 뜯어 고치고 정치적, 사회적인 개혁을 끊임없이 시도하여도 우리들의 문제는 여전합니다.
에너지가 외부지향적이다 보니 자기로부터 멀어지고 극에 달해서는 얼이 빠지고 자기를 상실하게 된다.
아기는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고 불고 떼를 쓰면서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린다.
당신의 마음이건만 당신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당신입니다.
고작 자기의 마음을 본다는 것이 지나간 다음의 잔상인 그림자, 기억, 이미지, 허상만을 망막을 통해 볼 뿐이다.
기분 나쁜 마음의 눈으로서는 기분 나쁜 마음의 정체가 보이지 않는다.
전에는 마음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겁이 나고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자기의 눈초리와 얼굴의 표정과 자기의 목소리 자기의 태도나 행동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습관적으로 표출되는 쏘아보는 눈초리 어둡고 냉랭하고 굳은 표정 무감각하고 무례한 소리 방만한 태도나 행동으로
목소리 말소리의 중요성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의 말소리를 들어봄이 되어야 자기의 말소리가 너무 큰지 작은지 너무 빠른지 느린지 흥분되어 있는지 안정되어 있는지 가늠이 되어
아직도 자기 몸을 감추려고 들고 노출시키기를 꺼리는 자기의 마음을 읽어
허상을 보고 잘났다 못났다고 한다.
모자람을 검증하기 위하여 과거를 파지도 않고
자기의 소리를 듣다가 보면 거기에 빠져 그 뜻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남들이 내는 소리에 대하여는 대강 느낌이 있지만 자기 자신의 소리에 대하여는 캄캄합니다.
자기의 말소리를 자기가 들으면서 말하는 능력이 생겨 말에 실수가 없어져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이 없어진다.
일부러 좋게 들리라고 꾸며서 나오는 소리는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소리일 뿐 제 소리가 아니다.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라 병원이나 약이나 침이나 안마시술 등에 의존합니다.
병신이 아닌데 병신이라고 한다고 보아 거부와 저항을 하면서 반발하기 십상입니다.
무언가 시원하지 못하고 답답한 것이 중생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바로잡고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남을 바로잡고 고치려고 한다.
몸과 마음을 늘 비춤으로 보살피지 않으면 고독과 허무가 당장 쳐들어오기 때문 입니다.
자기의 몸을 위하여 이기적이 된다. 소유지향적이 된다.
사물을 바라봄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돌아봄이 끊어지거나 망각함이 있는가? 없는가?
자기의 육체만을 자기로 알고 사는 단계에서는 자기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자기의 외면만을 본다.
잠시라도 중지하면 몸이 식고 아프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안절부절 헤멘다.
몸을 상실한 데서 온 허무감 (虛無感) 공허감을 (空虛感)
자기의 몸에 대한 감각이 명료하지 못하여 부분적이고 간헐적인 데 그쳐 몸을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평소 몸을 떠나 몸을 놓치고 몸을 버리고 사는 것이
여기에서 또 놓쳤다라고 하는 후회와 자학(自虐)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보고 유체 이탈 화법을 쓴다고 비난합니다.
변명을 하거나 합리화를 하여 자기를 알고 자기를 고치는 자기 인생의 주인노릇하기를 포기하고 만다.
자기 스스로 해결할 생각은 않고 무작정 남에게 의존한다.
천도제를 통해 위안을 얻거나 이고(ego)의 만족을 얻을 수는 있지만
허위와 거짓에 산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첫째 그걸 인정을 해야 돼.
자기의 어떤 부분이 잘못이고 취약점인지 그 원인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일어나는 책임을 생각이 지지않고 감각의 탓으로 돌리는 말입니다.
도가 하늘 저 멀리 있거나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격식을 벗어나면 틀렸다고 거부하고 저항한다.
몸을 보호하고자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대항하고 이기려고
나머지 반쪽을 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자기가 못난 줄도 모르고 잘난 줄 알고 고치려는 의지도 없다.
사람이나 물질에 끌리게 됩니다.
불쾌하고, 두렵고, 기분 나쁘고, 속상한 것은 지금 나의 문제이지 심중에 있는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생망이라는 (이 생에 망했다)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관점을
구경하면서 즐기지 못하면 심심해지고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괴로워지고 불행해집니다.
정신이 나가도 나간 줄 모르고 정신이 들어와도 들어온 줄 모르는 것이 중생 입니다.
이전과 다름없이 부자유하고 고통이 여전하다.
마음이 몸의 주인이라는 착각을 깨고
내가 내 생각으로 나를 속박하기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된다.
아직 속물의 신세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아 생각이나 감정에 이끌리는 때가 있으므로
주변에는 관심이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지도 않고
소인은 생각에 이끌려 살고
자기 생각만 하지 남에 대한 감각이 우둔하여 이기적이므로 남의 감정에 상처를 주게 되어 대인관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생각으로 고집을 피우고 주장하고 논란을 한 사실에 대하여 부끄러워 한 것 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제대로 운전할 줄 몰라 교통사고를 많이 저질러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산다.
자기를 심판하고 자해하고 자학하거나
무의식적인 잠 속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자꾸만 이 생각 저 생각을 일으켜 감각으로 바라봄을 방해하고 기피합니다.
자기를 겁나게 하는 자도 자기 이외에는 없고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고, 왜곡하여 잘못 본 것을 보고 판단 평가 심판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내 입장과 취지를 상대방에게 납득시키고 설명하기 위해 한 생각을 내어도 상대방에게는 공격으로 간주되고
그 동안 덮어 놓았던 속내를 자기에게 노출시키고 개방시키며 살아야
안 그러면 겉돈단 말이야.
몸과 마음을 항상 비추지 못하여 어둡고 캄캄하여 무의식에 떨어져 답답하고 무섭고 허무합니다.
몸이 아프게 사는 병신이고 (病身) 마음이 괴롭게 사는 병심인 (病心) 줄도 모르면서 남에게 건강한 신체나 건전한 정신에 대하여 혹은 길흉화복에 (吉凶禍福) 대하여 떠들고 설교하는 (說敎)
남의 아픔과 괴로움을 감각하고 이해하고 소통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미워하는 소리를 내는 이고(ego)에게
동물성을 통하여 서로 성내고 다투고 싸우는 것이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안으로 위축되고 고립되는 기미가 보이면
가장 무서운 것은 밖으로 존재하는 두려움이 아니고 자기 안에 존재하는 몸의 아픔과 마음의 두려움입니다.
내면의 소통을 등한시하면서 외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 입니다.
보는 자기가 보이는 자기에게 벌을 주고 보이는 자기는 벌을 받아 괴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화에 대한 적대감 화에 대한 두려움
자기의 안일만 추구하고 만족하는
자기의 약점, 못난점, 감추려들고 남의 약점, 못난점, 들어내려고만 한다.
자기의 목소리가 우는 소리를 내거나 탁한 소리를 발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음성이 갈라지고 복합적인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가 어려워서
판단 평가 심판을 통한 자해행위를 하고
남의 생각이든 자기 생각이든 어떤 생각을 금과옥조로 알고 따르고 지키려는 사람은 율법에 얽매어 사는 단계이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여기에서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집니다.
또 하나는 열등감이라고 하는 떡잎으로
누가 나를 비방을 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괴로워지는데
자기 이외의 것을 거부하고 부정하여 홀로 독존하던
상대방의 주의 주장을 들음에 있어서 자기의 주장과 주의를 텅비우고 들음으로써 상대가 왜 그런 주장을 한 것인지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확장하고 과시하고
어두우면 자기도 모르고 남의 감정도 보이지 않아 자기와 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봄님들은 간단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자기에게 소홀하고 인색하여 자기에게도 복을 짓지 못하는 주제에
자기를 떠나 남을 미워하고 번뇌망상을 일으키면 괴로워하고 안정을 잃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늘 못 마땅해 하고 못미더워하고
내면을 돌아보기는 커녕 아예 외면하고 달아나는 데 명수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어두워지고, 답답해지고, 허전해지고, 무서워지고, 외로워지고
자기가 자기를 욕하고 때리고 자기가 자기를 나누고 자르고 자기가 자기를 가두고 속박하고 자기가 자기를 업신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자기 몸을 부리면서 산다. 그러면서도 그 몸을 운전하는 운전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에게 자기를 묻습니다. 남이 쓴 책에서 자기를 배우려고 합니다.
자기가 잘못하고도 자기의 잘못인 줄 몰라 남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기 일쑤이면서도
절대로 자기의 잘못을 상대에게 털어 고백하지 (告白) 않고 숨기기에 급급하면서 대립, (對立) 갈등, (葛藤) 투쟁을 (鬪爭) 일삼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무런 존재감이 없이 주변으로 밀려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 것에 속하면 답답하고 비좁아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기의 비좁은 분장 업무에만 매달리거나 빠지지 않고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자기의 주관이라고 하는 색안경을 쓰고 자기와 남을 본다.
국민에게 설득을 하고 이해시킬 소통의 능력이 없어
자기의 지식과 경험에 의거 자기의 주장을 피력하고 자기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고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다.
좁은 소견이 넓어지고
아주 큰 오류를 (誤謬)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은연중 오류를 범하고 있는 줄도 자기 자신은 모르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고 망설여진다.
자기가 재판관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에게는 판단의 오류가 없는 듯이 남들을 심판하고 단정한다.
자기의 생각을 표출하여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사물은 내가 좋다고 보면 좋은 것이 되고 내가 나쁘다고 보면 나쁜 것이다.
말로 표정으로 일으킨 바람은 자기나 남에게 물결을 일으킵니다.
자기는 항상 바르고 틀림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니
남을 비판하고 남의 단점을 보는 눈은 날카롭고 정확하다.
우리는 자기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끝없이 혼자 재미를 보려는 삶, 이기적인 삶
자기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삽니다.
자기가 남에게 드러나게 되면 우리는 부끄러운 감정을 느낍니다.
어떤 결론을 내게 되면 고정관념, 선입관으로 잠재되고 입력되어 그 생각이 우리를 구속하는 율법이 되어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자기가 내린 자기의 생각에 (추리 판단 결론 평가 심판) 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어버린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깜깜하다.
부동심이 무엇인지 모르니 의심이 절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창조한 생각이나 말에 걸리거나 놀라지 않는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라고 하는 한 생각을 자기로 착각하며 산다.
자기가 말하지 못해 안달이 나는 상태가 아닙니다.
남들까지 끌어들이고 유혹하며
소아가 안다고 나서서 판단 평가 심판하고 소아가 뭘 하겠다고 나섰다간
자기를 괴롭히는 줄도 모르고 괴롭히며 살다가
죽는 날까지 깨닫지 못하여 반복하며 깨닫지 못하는
자기가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하고, 잘못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수긍하지 못한다.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집니다.
남들은 자기 얼굴을 보고 다 아는데 자기만 자기 얼굴을 모른다.
내가 거울에 비친 나에게 인상을 쓰면 거울 속의 나도 나에게 인상을 씁니다.
엄연히 자기가 내포된 현상인대도 그 현상의 밖에서 주시하는 자가 존재하므로 항시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이 분열되고 대상으로부터 소외되다가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없고 지구가 바로 서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어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군대에서 훈련을 통해 강제로 예절교육과 정신교육을 시켜도 작심삼일에 그친다.
굴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면
남들이 문제지 자기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서로 손해보지 않고 이득을 차지하려는
방안에 자기 몸을 숨기고 문구멍으로 남을 엿보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가 본 것이 맞고 남이 본 것이 틀리다는 터무니 없는 소신을 은연중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견지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하여 물어뜯거나 꼬집어 뜯는 공격성 입니다.
자기의 몸과 마음도 의식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태도나 언어행동에 대하여는 좋다 나쁘다, 맘에 든다, 안든다 라고 판단 평가 심판에 능숙한
말을 하는 당사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식수준이어서 무의식적으로 말만하고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수행을 흔히 알기로 고행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자기를 곡해하고 (曲解) 비난하는 (非難) 그 사람이 나를 깨우쳐주려는 하늘이 보낸 사자라고 (使者) 여기면서 분노를 (忿怒) 발하는 대신
은연중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고 뽐내면서 상대를 압도하고 이겨먹으려고 합니다.
자기를 자존망대하여 (自尊妄大) 남의 위에 서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여 자존심이 (自尊心)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기를 높이고 뽐내는 소리가 나오는 사람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남에게 신경질을 내고, 욕설을 하고, 화를 내고, 폭행을 하고,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를 보려고 하는 자기를 향해 돌아봄 하라는 가르침도 없거니와 설사 그러한 정보를 접하여도 거부와 저항을 한다.
늘 나를 '보는 나'와 '보이는 나' 둘로 분열시켜 놓고 서로 간에 경쟁을 유도하고 대립 갈등 투쟁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여 자기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율법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별것 아니라고 무시하고, 별것을 찾아 밖으로 한눈을 자주 팔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을 사랑하라는 가르침만 받아와서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이 기본이 안 되어있으므로 사랑한다는 것이 미움으로 변한다.
그동안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느라고 그대들을 망각하였음을
문제는 깨닫고도 다시금 놓친다는 것이다. 놓치게 되면 깨닫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기를 살피지 않아 자기의 부족함에 둔감하여 스스로 자만하고 자아도취하며 사는 사람은
「돌아봄」이 생각의 끼어듦으로 끊어지지 않고
소아는 그 한계성 때문에 항상 죽음의 공포와 슬픔이라고 하는 멍에를 안고 산다.
그래서 기다리고 찾고 추구하는 일이 끝난다.
자기를 보수와 진보 양자 중에서 택일하여 스스로를 보수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로 자처합니다.
판단 평가 심판이 거듭되어 마음 고생이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의 위대하고 막강한 힘을 지식이나 율법이나 생각으로 제한하고, 한계 지우기 때문이다.
생각으로 자기가 자기를 해롭게 하고 미워하는 자기를 미처 알지 못함일까?
자기가 자기를 자해하는 (自害) 사람이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머뭇거리거나 걸리는 바가 있으면 통과하지 못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상대에 힘을 실어주는 공경과 이해의 부족에 기인함이고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믿고 자기 암시를 (暗示) 아무리 행하거나 아무리 기도를 (祈禱) 한다고 해서 자기 신상에 (身上) 변화는 (變化)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의지적인 명령에 대하여 거부와 저항을 낳아 생각이 분열되어 서로 싸우게 되고
자기에게 무지하게 되었고 주위나 사물을 감지함에도 똑똑하지 못하고 희미하다.
자기의 재능이 무엇인지 몰라
자기 안에 형성된 대화의 장벽을 어떻게 스스로 무너뜨리고
자기와 남, 안과 밖, 둘로 분열된 가상의 공간인 몸에 갇힌 채 생각을 굴리다 보니 번뇌망상이라고 하는 헛것을 만들어
본질이나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비현실적이거나 현실도피로 보여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나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려던 생각이 그치면서
천지만물과 나라는(I am) 이고(ego)를 분열시키게 (分裂) 되어 고독하고 심심함을 느껴
허공과 자신을 분리하여 자기와 허공 보는자와 보이는자가 분열되어 허공을 두려워하고 배격하여
자기와의 소통이 불통인대 어찌 남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소리는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를 인정해달라는 투가 섞여 있는 말소리 입니다.
자녀들의 학원 과외비 때문에 가정경제는 파탄에 직면하여 만성적인 적자에 학부모들은 시달립니다.
일류대학을 나왔느냐 지위가 높으냐 돈이 많으냐 명성이 있느냐는 더이상 교육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맏딸을 키울 때는 자기가 너무 간섭하고 강요하였기에
조건반사로 일어나는 마음을 정신이 즉시적으로 비추어 보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소아가 만들어낸 오해와 갈등의 구렁텅이에 빠진
조건반사가 또 다시 조건부여로 입력이 되지 않아 또 다른 조건반사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야, 내가 와 이따위 음탕한 생각을 하지?
어둡고 우울하고 참담하던 (慘憺) 것이 화안하게 밝아지고
그것이 자기의 잘못인 줄 몰라 분노가 자기의 몸을 태우는데도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얼굴을 꾸밀 수 있다.
우리는 자유를 좋아하고 속박을 싫어한다.
자기를 변명하고 방어하면서 시비를 (是非) 가리려고 발칵 뒤집어지기 일쑤입니다.
이고의 (ego) 자존심을 누가 건드리면 조건반사를 (條件反射) 통하여 욱하는 파장을 (波長) 일으켜 감정을 (感情) 표출하기도 (表出) 합니다.
컨디션이 나빠지고 일에 흥미를 잃어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스펙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위도 없고, 명성도 없고, 돈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무지랭이, 못난이, 등신, (等神) 꼴불견, 상(常)놈이라고 비하합니다.
작은 일을 할 줄 모르고 도외시하고 등한히 하는 사람은 절대로 큰일을 하지 못한다.
감각이 계발되지 못하여 생각으로 즐거움이라고 하는 행복이라고 하는 대어를 낚으려고 한다.
상대방의 환심을 얻어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적의식으로 나온 것은
며칠 동안 잘 되다가 미끄러져 오늘은 공부가 시원치 않다는 표정들이다.
텅비기도 어렵지만 거기에 안주하면 힘이 없어 흐트러지고 맙니다.
어쩌다 한순간 시도를 해보지만 지속이 되지 않고 끊기는 바람에 후회나 하고 금방 까먹고 잊어버리고 맙니다.
잠시 잠깐 마음이 비워지고 고요한 상태는 누구에게나 일시적으로 온다.
텅빔을 보고 알았다고 스스로 깨달았다고 착각하는데
잠시 잠깐의 쾌락을 맛보느라고 자기 몸을 잃어버리는
우리는 잠시라도 마음을 비우고 있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큰 일이라도 나는 듯 즉시 마음의 여유공간을 생각으로 채우고 덮어버립니다.
하루종일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잠자기를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어야
어두운 잠에 대한 부정적인 (否定的) 태도가 바뀌어
자면서도 잠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뒤척이지 않고 곧바로 잠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들어 지내는 밤의 시간을 마음으로 삶의 시간에서 배제하거나 제외하기 일쑤입니다.
마음이 단독으로 잡념이나 망상을 피울 때 몸 따로 마음 따로가 되어
잡념이나 번뇌망상 등 부정적인 생각으로 창조를 하므로 인생이 부정적이 되고 맙니다.
생각이 난무하는 가운데 들으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소리가 울퉁불퉁하여 시끄러운 소리는 잡념이 많고 갈등이 많아서 자갈밭에 수레 굴러가는 소리와 같이 부딪치고 싸우는 소리가 나오고
잡념과 번뇌망상에 끄달리며 괴롭게 사는
낭독시 잡념이 무성하게 일어나면 눈으로 글자를 정확하게 볼 수 없어 글자를 틀리게 읽게 되고 입으로 읽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게 되어
머리에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면
장애자를 보고 마음과 몸을 자유자재하게 부리고 쓰지 못하니 동정 어린 눈초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재미를 통해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소아의 집요한 일념 때문이다.
재산을 지키려고 하는데
천하의 부귀공명을 얻는다 하여도 그대의 허전한 가슴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밖을 향해 생각과 감정을 통해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추구하는 과정과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추구하게 되고 서로간에 쟁탈전이 벌어진다.
재색명리만 (財色名利) 획득하면 행복할 (幸福) 것이라는 꿈을 꾸면서
재색명리에 (財色名利) 욕심을 내는 일이 고작이던
잘먹고 잘입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남들에게 존경을 받고 남들에게 대접을 받고 남들 보다 잘 사는 삶을 위해
재색명리 (財色名利) 구하느라고 정신 없이 밖으로만 바라보며 살다가 보니
재색명리를 초월하지 못하여 애착 탐착을 벗어나지 못하여
재색명리에 한눈을 파는 동안 몸과 마음이 쿠데타를 일으켜 안방 사랑방 다 차지하고 자기는 행랑채로 쫓겨난 신세가 되었습니다.
재색명리가 (財色名利) 있으나 없으나 구애받지 (拘碍) 않고 안달하지 않고
보통 우리는 컨디션이 좋아지기를 바랄 뿐 컨디션이 나쁘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와 태도를 갖고 있다.
대부분 다른 분야나 일상의 삶에서는 사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잡히지 않아 감지능력이 떨어진다.
고작 바다의 표면만 보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급기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슴에서 정감을 실어내지 못하면 무미건조한 소리가 나오고
중요사안이나 정책 결정과정에 소외되지 않고 관심을 갖고 참여하여
인간의 외부에 있는 신(神)을 막연하게 숭상하고 복종시키는
흐리멍덩한 정신을
자기가 보수나 진보 어느 하나에 속하여 자기의 반대편의 주장을 보거나 들을 때 거부하거나 저항을 하면서 말다툼으로 부정하는 것이 인심입니다.
음을 용납하지 않는 양일변도로 나아가 보수 아니면 진보가 되어 내적 외적으로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지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역사를 되풀이합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적인 행보를 하기가 어렵고 진보주의자는 보수적인 행보를 걷기가 어려워 천편일률적으로 나아가
종교적으로 신의 노예가 되고 정치적으로 독재자(왕)의 노예가 되고 경제적으로 재벌의 노예가 되고
그 생각의 노예가 되고 노심초사하며 근심 걱정에 놀아나는 틀에 박힌 인간이 되고
어떤 전통이나 관례나 습관이나 특정의 윤리도덕관에 사로잡혀 틀에 박힌 생각이나 언어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구태의연한 인간이라는 것을
몇푼어치 되지 않는 주관적인 지식과 경험이라고 하는 잣대를 가지고 단정을 짓는
조건부여에 의한 조건반사가 일어나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조건부여(입력)와 조건반사(출력)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적인 삶의 수준이다.
밀리는 기미가 생기면 속절없이 포기하는 대신
누가 조금만 건드리기만 하여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하면 괴로움이 당장 없어지는 줄 안다.
그분의 신봉자가 (信奉者) 되어 모방하거나 답습하거나 그분의 추종자가 (追從者) 되지 않습니다.
졸리고 피로하고 아프고 멍청하다가도
무작정 거부와 저항을 하면 갈등이 조성되어
자기를 둘러싸 자기를 감금하였던 (監禁) 골통굴의 (骨桶窟) 작은 공간
과거에 대한 자의식으로 자기에 대한 판단 평가 심판으로 자해하게 되고
종교와 과학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해결을 보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상입니다.
종교란 인종적으로도 분열하고
상반된 두 마음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 돌릴 수 있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하는 이원성, 상대성이 교차하면서 끝없이 끌려간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부단히 선택하는 바람에 좋아하는 것은 적고 싫어하는 것은 많으므로 늘 부족하여 불평불만의 상태에 처하기에
좋다 나쁘다는 두가지 생각의 분열현상을 야기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쫓아 헤매고 헤매도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은 눈으로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하고 추한 것은 아예 보려고 들지 않는다.
좋은 결실만을 바라는 성급한 대중의 욕심과 기대에 편승하여
사용법을 몰라 본래 지니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므로
귀로는 아름다운 소리만 들으려고 하고 시끄러운 소리는 거부감을 느껴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의 추한 모습은 다 버리고 가장 좋은 모습만 기억하고 그것을 자기로 간주하고 자기라고 여긴다.
의식수준이 낮은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만물과 담을 쌓고 자기 홀로 고립될 때 심심해진다.
눈썰미가 없다는 것은 평소에 자기의 주변을 눈으로 유심히 둘러보고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이 없으면 잡념이 든다.
지켜봄이 순간적으로 끊어진 틈에 몸이 마음(생각)을 쫓아 가게 만들어
잡았다 놓쳤다 하면서 후회막급 이다가
모으고 지속하는 힘이 부족하여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의식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을 일을 당하거나 손해 볼 일 생겨도 잔머리 굴리지 않고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라는 절대절명의 (絶對絶命) 절박감이 (切迫感) 어느날 나의 내면에 들이닥침에
공부 꽤나 하는 사람도 죽을때 잘 죽기를 바라니 이것이야말로 공연한 걱정이며 번뇌망상이니 (煩惱妄想)
번뇌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바
죽음은 삶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착각이고
죽을 걱정을 하는 것은 어리석음 입니다.
생노병사의 (生老病死) 끄트머리에서 억지로 끌리어 죽어서
죽음을 철천지 원수로 (怨讐) 여기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런 줄도 까마득하게 모르는
이 생에서 죽는 순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감상의 깊이가 천박한 수준에서 잘못 흉내 내면 현실을 놓치고 공상의 세계에 빠질 수 있으므로
죽음이 두려워 돈을 벌어야겠다는 강박감에 (强迫感) 시달리지 않고
죽음이 두려워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되어
전부다 빼꼼~하게 요래 가지고 못 와. 오겠다 해놓고는 못 와. 들킬까 싶어.. 공부 좀 해가 온대.
가상적으로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부르기는 커녕 갈수록 배가 고파진다.
최종적으로 자기의 결재를 받아 자기의 고유방식에 따라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의 뜻대로 독자적 자발적으로 가는 삶의 길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보존하지 못하고 다시금 망각하고 만다.
요양병원에 (療養病院) 갇혀 아무런 대책도 희망도 없이 속절없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患者) 들끓고 있는
우리는 지금까지 좋은 것은 돌아보지만 나쁜 것은 멀리 하고 아예 보려들지 않습니다.
바닥에서 놀다가 싫증이 나면 다락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놀지만 그래도 모자라면 아예 밖에 나가 마당을 아장 아장 한바퀴 쓰윽 돌고 온다.
일상의 권태로움이 지겹고 심심한대다가 억지로 하기 싫은 공부, 하기 싫은 일 하다보니 현실의 공간을 떠나 아예 본격적으로 가상공간으로 빠져든다.
만족한 상태를 그리워합니다.
자기도 불편해지고 겸손을 받는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떠 받들어지는 것이 송구스럽고 미안하고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지레짐작하여 공부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공을 (恩功) 까마득하게 알아보지 못하고 눈 한번 맞추어 본 적이 없으니
권력이나 재력이나 학식이나 기술이 있다고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억압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지식과 정보나 결론에 만족하는 대다수 사람들이다.
말이 입자적인 측면만 나타내고 파장적인 측면이 가미되지 못하면 무미건조하여 감동과 공감을 주지 못합니다.
생각이나 정보에 걸려 마음을 비우지 못하므로 과거의 모방이나 답습만 할 뿐이지
지식과 논리를 동원하여 상대방을 이겨먹으려는 데서 발하는 말이나 글을 통한 잔머리요 꼼수 입니다.
정신차리라고 하는 말을 늘상 하고 들으면서도 막상 정신차리며 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식을 쌓아 이성을 계발하면 냉철해지면서 자연히 머리가 비어지지만 가슴깊은 곳에서는 허무감을 느껴 안심입명하지는 못합니다.
논쟁을 위하여 지식과 정보가 활용되었으나
직장인들 역시 일에 집중이 어려워 죽지 못해 출근하는 것이 고역입니다.
대부분의 봄님들은 생각을 내어 기억을 더듬어 지식으로 검색을 하여 한두개의 단어를 찾아 대답을 하려고 든다.
이 모든 말은 감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몰라도 아는 체하니
격투기 보기를 좋아하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여전하게 격투기 보기를 좋아한다면
돌아봄을 어떻게 하나요? 돌아봄이 무엇인가요? 하는 질문을 통하여 계속 생각이 자리를 고수하여
내 몸안에서 증험되지 (證驗) 못하고 마음으로 상상의 날개만 펴는 것은 하등 의미없는 일이요 미신이라고 (迷信) 할 것 입니다.
진실을 꾸미거나 부풀려 말하면
핵폐기회담이 성사되지 않아서 암담해하고 짜증을 내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안목들이 있으나
생각으로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고 두갈래로 벌어져 선악을 따지고 분석하면서 의심하고 갈등하면서
어느 곳에서 왔는고? 동산이 대답하기를 사도에서 왔습니다.
잘못의 원인을 안으로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밖으로 남에게서 찾는다.
시기 질투심에 자기의 주체성을 빼앗겨 속이 상하고 열불이 나서 분노로
펼칠 줄을 몰라 집중이 안되고 공부가 안된다고 괴로워하면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아무리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도 시간만 갈 뿐
주변이 어두워진 가상의 공간에 자기 홀로 존재하게 되어 주변과 자기가 공존하지 못하게 된다.
얼굴이 찌그러지고 목소리도 고약하게 변한다.
징징대는 소리가 나오거나 우는 소리가 나와
욕설로 공격을 가하면서 성질을 내게 되면
쫓기거나 쫓아가기에 급급하지 않아 여유만만한 삶이 살아집니다.
쫓겨다니지 않고, 숨어지내지 않고, 당당하고 편안하게
차가워진 몸을 훈훈하게 덥힐 줄도 모르고
착각과 (錯覺) 오류에서 (誤謬) 발한 거짓된 언행이야말로 (言行)
대학을 졸업하여도 책읽기가 무섭고 공부하기 싫은 상태를 모면하지 못한다.
틀에 박힌 운율이 반복되는 카르마를 잡아내어 시정 조치시킨다.
마음의 괴로움과 몸의 아픔이라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책자를 (冊子) 통하여 해결하려고 무던히 노력을 하였으나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여
아무리 읽어보고 연구를 해도 지금 여기 내가 구체적인 생활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하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 사라지면 안절부절 심심해서 못견딘다면
처음에는 편한듯 하여도 나중에는 몸이 부서지는듯 몸이 불편하고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신통력에 (神通力)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미신적인 (迷信的)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업연에 끌려 진일보된 삶을 개척하지 못하고 같은 운명의 테두리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숙련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속단심을 (速斷心) 버리고
그러나 밥은 끓었는데도 그리움, 외로움, 두려움, 괴로움, 아쉬움, 설움은 여전하였다.
자기의 심심함을 달래고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손쉬운 수단이요 방편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게 경계하고 의심하는 표정과 소리가 나온다.
생각은 침묵을 두려워합니다.
침묵으로만 일관하면 진실이 묻혀 소통이 되지 않고 오해와 불신이 생깁니다.
이고는 즉시 심심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소리를 만들어 침묵을 깨뜨림으로서 이고는 다시금 살아난다.
누구나 칭찬은 좋아하고 비방은 싫어한다.
칭찬을 받고자 하는 욕심이 내면에 깃들어 자리잡으면 칭찬의 노예가 된다.
끝없이 쾌락을 추구하고 재미를 보려고 한다.
쾌락의 추구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일 뿐 다시금 불쾌해지기 마련 입니다.
걸리고 막히고 제동이 (制動) 걸리어 자유자재가 (自由自在) 되지 않는 까닭은 이고가 추구하는 쾌락의 욕구나 쾌락의 발로가 어떤 생각 보다 우선적이고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고, 밝은 것을 좋아하고, 능한 것을 좋아합니다.
사안에 따라 마음이 급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하루 밤에 집을 열두 채나 짓는 꿈을 꾸거나, 일확천금 (一攫千金) 하려는 꿈을 꾸거나, 꽃다발을 새 집에 장식해놓고 집들이 하는 꿈을 꿉니다.
특별히 생각이 난무하지는 않아도 무언가 꺼림직하여 청명하지 않을 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망념에 사로잡혔을 때
세상적으로 아무리 높은 지위를 얻고 돈을 벌어도 일시적으로 만족할 뿐 영구적으로 만족하지는 못합니다.
내일 당장 길거리에 나앉는다고 하여도 당장 세상이 무너진다고 하여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1000만원을 분실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자동적으로 생각이 벌떼 처럼 일어나 자기를 쏘며 공격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이 왜소하고 (矮小) 초라해 보이지만
큰 것을 좋아하고 작은 것을 싫어하는 마음(생각)에 이끌려
이고가 (ego) 충격을 받아 이고가 무너져 두뇌가 텅비고 고요하고 화안하여 하얗게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합일의 초기단계에서는 종종 생각이 봄을 밀어내고 주인행세를 하고자 하는 반격이 만만치 않다.
합일 직후에는 이 능력이 잘 구사되지 않는다.
자기의 얼굴에 불만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 불쌍하다는 생각과 언짢아 괴로워하는 자신의 감정을
식물인간은 더이상 살아보았자 소용없다는 생각은 짧은 생각입니다.
타협과 (妥協) 협상으로 (協商) 사태를 (事態) 수습해보려고 (收拾)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생로병사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일으켜 잡념이나 번뇌망상이라는 먹구름을 일으켜 텅빔을 채우거나 덮어버리고
몸과 마음이 그대의 뜻대로 되어지는가?
통증은 몸의 현상이지만 괴로움은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좋아하여 범상하여 (凡常)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용납하지 (容納) 않아 아예 상종하지 않으려고 피하고
진실과 정직과 솔직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드러내거나 표현하지도 못한다.
생각으로 특정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라기 보다 집착에 가깝다.
어느 한가지 그림자라도 남아있다가 계속 뜨고 끌림이 있다는 것은
특정의 개인에게 시선이 꽂히면 피차가 불편해지는 법이니
집착과 원망이 남아있는 한 속이 불편하고 괴로워
숨죽여봄하는 것에 답답하다고 생각하여 거부와 저항을 하면서 고통으로 여겨
전통이나 관습이나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교리나 윤리도덕이나 심지어 건강에 관한 상식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받아들이고 믿어
책읽는 운율이 틀에 박힌 고정되고 단순한 소리가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천편일률적으로 나는 판에 박히고 틀에 잡힌 인위적이고 습관적인 소리 들어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까르마에 의한 소리가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날씨를 심판하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한 생각 미움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다.
폄하하거나 (貶下) 오해하지 (誤解) 않아서 편견이나 (偏見) 오해에서 (誤解) 오는 나쁜 감정의 찌꺼기가 남지 않고
생각은 유위(有爲)인지라 끊임없이 편안하려는 욕구에 따라 탐색을 멈추지 않으나
편안하고자 하는 뿌리 깊은 욕심에 사로잡혀 단 한번도 편안하지 못하고 불편함과 싸우느라고 늘 불편함에 시달린다.
평등과 차별을 각각으로 보는 것은 눈병이 나서 하나가 둘로 보여서 그렇지
평등만을 알고 차별이 있는 줄을 모르면
그럴듯 하다고 지나쳤을지도 모르고 속으로 거부반응 일어나도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상의 나날은 권태로워지고, 초라해지고, 심심해진다.
특별(特別)한 것을 구하는 것은 생각의 작용으로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여 오해하고 막히어 소통이 되지 않아 사이가 좋았다가 나빠졌다 합니다.
폭력으로 남에게 이기려고하는 습성을
폭언 실언 욕설 망언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265mm란 표시만 믿고 사면 내 발에 맞지 않은 것으로 잘못 살 수도 있지만
얼굴의 표정이 밝아질 뿐 구체적으로 대인관계에 정감을 표출하기에는 자유자재하지 못합니다.
세상 모르고 푹 쉬어보았으면 하는 소원을 (所願) 품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유일한 소원이 휴식 (休息) 안식임을 (安息)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한채
피상적으로 욕심을 이해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냥 건성으로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결심을 해도 반사적으로 밖으로 달아나 심심함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찾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 찾아 쓸 수 있다.
간절하지 않은 가운데 생각이나 욕심으로 억지로는
하기싫다 귀찮다라는 상대적인 생각의 저항에 직면하므로 말하고 행동하기가 막히고 어려워져 힘듭니다.
책을 읽으려고 마음은 먹는데 곧바로 마음이 거부하고 나서는 바람에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연속적으로 보고 알아차리려는 욕심을 내어서는 초조하여 (焦燥)
하면서도 하기싫다는 마음이 발목을 잡기 마련이어서 찝찝합니다.
상위자가 (上位者) 자기를 하대하고 (下待) 천대하는 (賤待) 것을 당하고 당하여도
교사와 학교수업에 대한 권태와 불안 거부감으로 매일 같이 가기 싫은 학교에 나가야 되는 부담감에 찌들어
중고등 학교에서도 힘으로 남들을 지배하려는 동물성으로 인하여 폭력조직인 일진회 (一陳會) 또는 왕따현상이 존재하는 것은
학문과 지식은 생각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존중한 반면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분야는 감각이 주가 되다보니 일자무식 무지랭이로 보아 멸시하였던 것이다.
우연이거나 재수가 좋아서 이겠거니 하면서 속으로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눈으로 대상을 보면 대상에 사로잡히고 빠져 귀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고
대부분 여기에 주저앉고 만다.
심지어는 일(공부)에 빠지는 것이 일의 핵심으로 착각합니다.
봄은 없는 것이고 모르는 것이라는 한 생각을 내고 저장하여
어쩌다가 절벽 길을 한번 건넜지만 두번째 건너가려면 또 다시 두렵고 망설여집니다.
어떤 한 생각에 사로잡혀 발걸음을 옮기게 되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경직되어서 발걸음이 무거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한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의 팔자타령을 하거나 신세를 한탄하면서 괴로워 합니다.
생각에 한번 잡히거나 빠져드는 날이면 꼼짝달싹 못합니다.
앞 생각에 대해서 뒷 생각이 판단 평가 심판을 하는 한, 생각의 행렬은 그치지 않아 생각이라고 하는 먹구름은 걷히지 않는다.
한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에 대하여 또 하나의 생각을 덧붙이려는 시도이기 일쑤입니다.
앞 생각과 뒷 생각끼리 서로 반목질시하고 대립 갈등 투쟁하는 이원성으로 분열된
단전호흡으로 축기하는 것도 아직 설어서 자칫 호흡에 사로잡히기 까지 합니다.
어느 하나의 진영을 좋아하고 반대진영에 대하여 싫어하는 것이 있으면
나라고 하는 실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관념과 고집이 있는 한
잠깐만 한눈을 팔면 금방 생각은 말썽을 피운다.
그리하여 언행에 제약을 받고 부자유합니다.
앞 생각에 대하여 뒷 생각이 대립 갈등 투쟁하면서
어둡고 답답한 감정에 매여 밝고 트인 감정으로 돌리지 못합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로 편가름하여 없는 자의 편에서 공격적으로 하는 봉사와 기부는
상반되는 두가지 생각 중 어느 한가지를 택하여도 거기에는 선택받지 못하고 배제된 나머지 한 생각이 불만을 품고 있어서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탄압과 여기에 상응한 거부와 저항이 반복되어 안밖으로 전쟁상태가 되고
항상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 항상 맑아야 좋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도 안되고, 하늘이 흐려도 안되고, 비가 와도 안된다.
안일하고 방만하고 게으르다.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역부족함을 느낍니다.
핵폭발 에너지를 전쟁도구로 사용하는 날이면 지구상의 인류는 후천의 인간개벽을 실현하기도 전에 존망생사라고 (存亡生死) 하는 인류멸망이라는 참극이 (慘劇) 벌어질 위기상황
그래서 발심이 안되고 정진력이 약하고 늘봄이 되지 않고 일심이 되지 않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음을 잡지 못한다.
사랑을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행복하기만을 원합니다.
행복하고 싶은 열망은 있으면서도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들게 느낍니다.
행복이라는 꿈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다가
외부의 환경조건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참된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개념정리가 잘 되어있지 못하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오락을 찾아 쾌락을 찾아 서성이다가
허무해지고 외로워지고 답답함이 생겨 이것을 풀고싶어서 노래를 듣거나 부르므로서 해소하려고 하고
바람이 나서 노름이나 게임이나 마약에 (痲藥) 빠지거나 성에 (性, sex) 빠져 정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공허감을 느끼게 되고 그 공허감을 채우려고 한다.
우리는 허전하고 외롭고 심심해서 일을 하고 일에 빠집니다. 일에 중독되어 삽니다.
요리 조리, 이리 저리 모면하려고 별짓 다해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다.
꿈을 꾸고 욕심을 부리며 살던 허황된 삶
헛된 것을 소유하려고 기력을 다 소진시키고 헛되이 생을 마감한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틀리게 발음하거나 불분명한 발음이 나온다면
가상공간으로 도피하기 위한 자금이 계속 필요할 것이고 그대는 돈의 노예로 시종하고 말 것이다.
적극성, 능동성, 긍정성, 자발성이 부족하여 아직 일심을 부려쓰지 못한다.
감각으로 정확하게 보지 않은채 가상공간에 생각 단독으로 표현하다가 보면 실지와 다른 진실하지 않은 횡설수설이 되고 맙니다.
돈이 없는데 돈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법은 없습니다.
밝은 것은 좋고 어두운 것은 나쁘다는 식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반쪽의 세상을 고집하며 나머지 반쪽의 세상과 담을 쌓고 살려고 한다. 그러므로, 거부하고 저항하며 괴롭게 살아간다.
제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인상을 쓰고 입방아를 찧으면서 하늘을 꾸짖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 여기를 떠나 과거나 미래라고 하는 가상공간으로 도피하거나
학생이나 직장인이 휴일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게 되고 방학이나 휴가를 꿈꾸지 않게 된다.
지금이 아니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면 행복이 오는 것으로 안다.
거리감에서 목표가 생기고 욕구불만이 된다.
「보는 자기」는 (현재의식) 끊임없이 「보이는 자기」에 (과거의식 또는 미래의식) 대하여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는 판단 평가 심판을 계속함으로써
현재의 자기가 과거의 자기를 떠올려 판단 평가 심판하고 벌주고 때리고 괴롭히는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를 유추하여 근심 걱정 불안 공포라고 하는 번뇌망상에 빠지는 것이 또 다른 고통이다.
무조건 연장자를 우대한답시고 먼저 타시라고 권해서는 도리어 불편하고 무례한 결과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형제간에도 재산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먹어 보고, 입어 보고, 만져 보고, 가져 보고, 산과 들, 바다와 강, 도회지와 시골, 바다 건너 오만군데를 기웃거려 보아도
숨을 죽이고 있으면 이고(ego)가 불안하여 의도적으로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나
발언권을 잡으려고 은근히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호흡의 리듬과 박자가 조급하거나 (早急) 두려움이 없어
타율적으로 호흡을 하면 얼마 못가 숨이 엉켜서 중단할 수밖에 없어 포기하고
호흡을 하면서도 코와 하단전을 의식하지 못하여 헐떡거리며 미약하게 무감각적 무의식적으로 하는
자기 혼자 존재하기 위해 싸움이 벌어지고 상대를 밀어내고 자기 혼자 독차지하여야 한다.
혼자서 입안을 하고 문건을 작성하여 종적으로 결재를 받는 시대가 아니다.
자기 혼자 하면 틀린 걸 모르고 지나갈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홀로 있지 못하고 홀로 서지 못하는 자아에게 있다.
왜 항상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함을 느끼는가?
자아는 계속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를 지속하므로서 존속하려고 한다.
화가 나도 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여 화가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기 마련이고
에잇 죽여버릴라!!! 하는 한 생각 일으키는 찰라
화가 나게 되면 붉은색을 띄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성질난 놈이 성질난 놈을 보는 거지.
화는 나쁜 것이다,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뿌리 깊은 인간의 집단의식이다.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고 잘못 판단하기 일쑤입니다.
화란 다시는 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고 화를 내지 않게 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일으키는 힘이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힘 보다 강하므로 성질을 부려
참으면 당장은 모면할지 몰라도 찌꺼기가 남아 다시금 싸움이 일어날 소지가 됩니다.
경계를 당하여 성질이 나는 순간
화풀이 당한 사람 역시 그렇게 하여 화는 순식간에 전염된다.
세상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려 거짓과 허구를 조장하는
날씨가 흐리고 어두우면 마음도 흐리고 어둡게 물들어져요.
환경조건에 따라 반응하면서 삶을 도모한다. 생존하기 위해 근심 걱정 불안 공포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환경조건에 따라 산란심과 혼침이 되풀이된다.
환경조건에 지배를 받아 꼼짝달싹하지 못함이고
사정없이 흔들리고 상처받고 아프고 괴롭고 방황한다.
아부는 진실을 가장함이요 상대를 기만함이다.
편안한 자리로 회복시키지 않고 져버릇하면 점차 정신력이 약화되어
담배 한모금 빨아들이면서 경험한 감각적인 몸의 반응을 무시하여 생각이 감각을 이김으로서 습관적으로 진행되는 흡연은 중단되지 않고 반복됩니다.
희노애락의 감정에 물들지 않고 상처를 받지 않는
기뻐하거나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즐기는 희노애락 (喜怒哀樂) 또한 일종의 파장 파동이므로 너무 심하면 마음의 괴로움이 됩니다.
희노애락을 맘대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
가슴이 닫혀 있으면 희로애락의 감정이 동할 때 가슴이 아프다.
우울한 기색이 없고
구름 사이로 잠깐 비친 희미한 빛을 본 기억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경계를 당하여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바라는
참지를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