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 유종열님의 봄 글

봄 글은 무엇이 다른가

인류 역사에 축적된 수많은 철학·종교·수행·명상 문헌 가운데 봄 글과 부분적으로 닮은 글은 많습니다. 하지만 봄 글의 특징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흐름 안에 결합하여 아우르는 데 있습니다.

무심을 말하는 글도 있고, 생각을 바라보는 수행도 있으며, 몸과 마음의 하나됨을 말하는 사상도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자기를 관찰하는 전통도 있고, 깨달은 뒤의 삶을 말하는 글도 있습니다.

원아 유종열님의 봄 글은 완성된 교리를 먼저 세워놓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설명한 글이 아닙니다.

자기를 보고, 알고, 생활에서 확인하고, 다시 보고, 전에 쓴 말에서 새롭게 드러난 것을 다시 써 내려갑니다.

그 과정이 2,756편의 글로 이어져 있습니다.

바깥을 보던 눈을 자기에게 돌립니다

원아 유종열님의 봄 글은 생활과 동떨어진 철학이나 관념의 체계가 아닙니다.

사람 때문에 화가 나는 일, 자꾸 떠오르는 생각, 이유 없이 불편한 마음, 반복되는 두려움, 이해되지 않는 내 행동처럼 지금 내 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상대와 상황을 봅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바깥에서 찾습니다.

원아 유종열님의 봄 글은 상대와 상황이라는 바깥으로 향한 시선을 자기에게 돌려, 지금 내 몸과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의 눈으로 직접 보게 합니다.

생각에 관한 글을 읽다가 지금 떠오르고 있는 자기 생각을 봅니다.

화에 관한 글을 읽다가 화가 난 자기를 봅니다.

판단에 관한 글을 읽다가 상대를 판단하고 있는 자기를 봅니다.

몸에 관한 글을 읽다가 지금 움직이고 있는 자기 몸을 봅니다.

감각에 관한 글을 읽다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자기를 봅니다.

봄 글을 읽다가 결국 자기를 보게 됩니다.

없애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봄 글에는 생각이 사라진다, 소아가 죽는다, 이고가 죽는다, 마음을 비운다, 숨을 죽인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들만 떼어놓고 보면 생각이나 마음이나 소아를 없애는 것이 공부의 목적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각은 죽였다가 다시 살려 씁니다.

소아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아가 주인이 된 뒤 다시 살려 씁니다.

무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다시 움직입니다.

행위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봅니다.

없애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제대로 부리고 쓰기 위한 공부입니다.

주인과 종의 자리가 바뀝니다

생각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각에 끌려다니며 생각의 노예로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이 일어날 때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며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각이 주인이 되어 감각을 억누르던 자리에서 감각이 주인이 되어 생각을 부리고 씁니다.

소아가 주인 노릇하던 자리에서 대아가 소아를 거느리고 다스리고 부립니다.

행위자만 있고 주시자가 없던 자리에서 행동하면서 동시에 행동하는 자기를 봅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입니다.

봄 글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는 무엇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인과 종의 자리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도 둘의 역할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봄 글에는 분열과 합일, 둘과 하나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그렇다고 하나가 된다는 것이 둘 가운데 하나를 없애버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각과 감각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면서 함께 움직입니다.

몸과 마음도 하는 일이 다르면서 하나로 움직입니다.

주시와 행위도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행동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보는 하나의 작용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봄 글에는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둘이 싸우고 갈라져 있던 분열이 끝난다고 해서 둘의 역할까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둘이 제 역할을 하면서 하나로 움직입니다.

생각과 감각은 서로 없애야 할 적이 아닙니다

봄 글에서 생각과 감각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이 주도권을 잡으면 감각을 억누르고, 감각은 닫히고 무디어집니다.

감각이 살아나면 지금 일어나는 생각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감각이 생각을 몰아내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감각이 주인이 되면 죽었던 생각을 다시 살려 부리고 씁니다.

필요할 때 생각하고, 생각을 그쳐야 할 때 그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과 감각은 어느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자리가 바로잡혀 함께 작동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몸과 마음, 소아와 대아, 주시자와 행위자, 고요와 움직임에서도 이와 닮은 변화가 되풀이됩니다.

돌아봄은 바깥으로 나간 눈을 자기에게 돌리는 일입니다

사람은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바깥을 봅니다.

사람을 보고, 물건을 보고, 사건을 보고, 세상을 봅니다.

봄 글에서는 바깥으로만 향하던 이 시선을 돌려 자기를 보는 것을 돌아봄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생각과 감정과 몸을 돌아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아봄이 이어지면 밖을 보는 동안에도 자기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

밖을 보면서 안을 보고,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몸을 보고,
말하면서 자기 말소리를 듣고,
생각하면서 일어나는 생각을 봅니다.

초기의 여러 글에서는 돌아봄에서 바라봄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순서가 설명되기도 합니다.

뒤의 글에서는 돌아봄과 바라봄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서로 오가는 것으로도 설명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의 순서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밖을 보느라 잃어버렸던 자기를 다시 보고, 안과 밖을 함께 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합니다

원아 유종열님의 봄 글 가운데 〈읽기만 하면 됩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는 봄 글을 지속적으로 매일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이 안으로 향하게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 까닭도 함께 밝혀놓았습니다.

봄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마음과 몸을 돌아보고 바라보고 늘 보도록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봄 글을 읽으면 계속 자기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생각을 읽다가 자기 생각을 보고,
감정을 읽다가 자기 감정을 보고,
몸을 읽다가 자기 몸을 보고,
말을 읽다가 자기 말과 표정을 보고,
행동을 읽다가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봅니다.

한 번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글에서 다시 보고, 다른 생활 문제를 만나 다시 보고,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 봅니다.

그래서 봄 글에서는 글을 읽는 일과 자기를 보는 일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글에서 가리키는 것이 자기에게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읽기만 하면 됩니다〉 원문 읽기 ↗

“읽기만”은 건성으로 읽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글자를 눈으로 훑거나 입으로 소리만 내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아 유종열님은 뒤의 글에서 책읽기만 하고 수행을 등한히 하면 반쪽이 된다고도 말합니다.

낭독하면서 글에 쓰인 대로 자기에게서 따라가지 않고 건성으로 읽기만 하면, 여러 번 읽어도 자기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고도 밝힙니다.

〈읽기만 하면 됩니다〉의 읽기는 글과 자기를 따로 두지 않는 읽기입니다.

처음에는 글의 뜻을 읽습니다.

읽고 또 읽다 보면 그 글이 가리키는 것을 자기에게서 보기 시작합니다.

생각이라는 말을 읽다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보고,
몸이라는 말을 읽다가 자기 몸을 보고,
숨이라는 말을 읽다가 자기 숨을 보고,
소리라는 말을 읽다가 자기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읽는 것과 돌아봄이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일이 곧 자기를 읽는 일이 됩니다.

고요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생활합니다

봄 글에는 무심, 텅빔, 가만히 있어봄, 숨죽여봄처럼 멈추고 고요해지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상태가 마지막은 아닙니다.

무심에서 다시 일심으로 움직입니다.

고요한 가운데 다시 행동합니다.

생각을 멈출 줄 알게 된 뒤 필요한 생각을 다시 씁니다.

소아가 죽은 뒤 대아가 소아를 다시 살려 씁니다.

가만히 있을 때만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도 자기를 봅니다.

결국 다시 말하고, 듣고, 걷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는 생활로 돌아옵니다.

봄 글의 공부는 생활을 떠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기의 주인이 되어 살기 위한 공부입니다.

같은 공부가 삶의 여러 자리에서 되풀이됩니다

생각을 보았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화가 날 때 다시 봅니다.

사람을 미워할 때 다시 봅니다.

몸을 움직일 때 다시 봅니다.

말할 때 다시 봅니다.

두려울 때 다시 보고, 욕심이 날 때 다시 보고, 누군가와 다툴 때 다시 봅니다.

그때마다 밖으로 나간 시선을 자기에게 돌리고, 무엇에 끌려가고 있는지를 보고, 중심을 잡고, 다시 생각과 몸과 마음을 부리고 씁니다.

그러므로 봄 글은 한 번 깨닫고 마지막 단계에 도착하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기를 놓칠 때마다 다시 돌아보고, 다시 자기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공부가 생활 전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봄 글은 무엇이 다른가

봄 글과 부분적으로 닮은 글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봄 글의 특징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흐름 안에 결합하여 아우르는 데 있습니다.

생각과 감각,
몸과 마음과 정신,
소아와 대아,
주시와 행위,
분열과 합일,
고요와 움직임이

서로 따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를 보고, 자기의 주인이 되어, 생각과 몸과 마음을 제대로 부리고 쓰며 살아가는가라는 한 가지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봄 글은 그 내용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읽다가 자기 생각을 보고,
읽다가 자기 몸을 보고,
읽다가 자기 말과 행동을 보고,
마침내 책을 덮은 뒤의 생활에서도 자기를 보게 합니다.

그래서 원아 유종열님은 “읽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읽는 것이 자기를 보는 일이 되고, 자기를 보는 일이 생활이 되는 글.

이것이 원아 유종열님의 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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