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관계, 감각과 생각의 합작, 허공·진공묘유·인당·백회·하단전을 충분히 거친 뒤 책의 75번째 글부터 숨죽여봄이 중심 수행으로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실제 숨죽임으로 중심을 잡지만, 뒤로 갈수록 들숨과 날숨에도 늘 함께 있는 고요한 바탕을 발견하고, 무위에서 다시 유위로 돌아와 정할 때와 동할 때 정신의 힘을 실제로 부리고 씁니다.
원아 유종열님 · 봄나라 · 2013.02.25
ISBN 9788994614083
정가 30,000원
종이책 품절
종이책은 품절되었습니다. 유튜브 낭독 재생목록이나 봄나라 디지털 원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숨죽여봄》은 처음부터 숨을 멈추는 방법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앞 권에서 정신은 몸의 행위자이고 마음은 몸을 비추는 주시자로 정리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정신·몸·마음의 그 관계부터 다시 세웁니다.
첫 글에서는 태양·지구·달을 정신·몸·마음에 견줍니다. 몸이 움직이는 곳에 마음의 빛도 함께 있어야 하고, 마음이 몸을 놓치면 잡념과 번뇌망상이 일어납니다. 마음은 몸을 대신 움직이는 주인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을 비추고 방향과 속도를 거드는 조수로 놓입니다.
초반에는 몸과 마음의 분열을 2,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심신일여를 1, 그 하나됨 속에서 생각이 비어 드러나는 정신의 바탕을 0으로 풉니다. 숨죽여봄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이 몸을 늘보는 생활부터 다시 다집니다.
몸을 본다는 말도 막연하지 않습니다. 호흡과 소화, 하단전, 머리의 생각과 가슴의 감정, 목·척추와 팔다리의 좌우 움직임을 실제로 감지합니다. 어디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고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지 알아 바로잡습니다.
몸의 좌우와 중심을 바로 세우는 수신은 사람과 사회의 문제로도 넓어집니다. 몸의 한쪽을 버리지 않듯 사람과 집단도 한쪽만 배제하지 않고, 때와 형편에 맞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문제를 정의·소통·수제치평까지 연결합니다.
사람의 됨됨이도 표정과 말과 행동에서 확인합니다. 본성의 허공성·침묵성·청정성·광명성이 실제 얼굴과 목소리,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일을 처리하는 능력에 얼마나 드러나는지가 의식수준과 인격의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몸을 늘보고 감각만 살아난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는」에서는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라는 생각을 내어 원인과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감성으로 본 것을 이성으로 연구하고 밝혀야 지혜가 자랍니다.
감각이 주인이 된 뒤 생각을 다시 살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감각으로 지금의 사실을 보고, 생각으로 원인과 이치를 밝히고, 다시 감각으로 그 생각과 행동이 실제에 맞는지 확인합니다. 감각과 생각의 합작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색즉시공·공즉시색, 허공, 진공묘유, 대소유무도 몸과 마음의 공부 안에 함께 있습니다. 텅 빈 공간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빛과 현상을 둘로 갈라놓지 않고, 비어 있으면서 모든 것이 나타나는 하나의 구조로 봅니다.
허공도 관념으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탁 트임·고요·청정·광명을 자기 안에서 직접 보고, 답답함·산란함·혼탁함·두려움이 일어날 때 실제로 그 허공의 성품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밖의 하늘에 빌던 데서 자기 안의 하늘을 쓰는 ‘천존에서 인존으로’라는 말도 여기서 나옵니다.
「나는 무엇인가?」에서는 본연의 나를 몸을 존재시키고 비추는 무한 허공의 광명, 본태양으로 밝힙니다. 대통합과 자유·평화·행복도 개인 안의 본질에만 두지 않고 사람과 사회의 소통과 통합으로 함께 봅니다.
인당과 백회, 대원경, 일원상도 이 흐름 안에 들어옵니다. 인당에서 좌우의 분열이 하나로 통하고, 백회에서 몸 안과 밖의 공간이 하나로 열리며, 하단전에 중심이 잡혀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구조를 세웁니다. 대원경과 일원상은 보는 나와 보이는 세계가 하나의 하늘 안에서 함께 드러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긴 전반부를 거쳐 75번째 글 「숨죽여봄으로 견성 양성 솔성하자」에서 제목의 수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들이마시지도 내쉬지도 않는 숨죽임으로 중심을 잡고, 그 중심에서 생각과 감정이 비어 고요하고 맑고 밝은 하늘의 성품을 직접 보는 것을 견성으로 둡니다.
견성 뒤에는 그 힘을 기르는 양성이 있습니다. 중심이 잡히면 호흡이 저절로 돌아가고 몸의 기운이 순환하며, 그 힘으로 몸과 마음을 기릅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좋고 싫음, 시비의 경계를 만나도 한쪽에 끌리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중심을 쓰는 데까지 가는 것이 솔성입니다.
따라서 숨죽여봄은 한 가지 호흡기술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성을 보는 견성, 그 힘을 몸과 마음에 기르는 양성, 사람과 일과 경계에서 실제로 부리고 쓰는 솔성을 잇는 문으로 사용됩니다.
이후에는 ‘생명의 호흡’과 ‘목숨의 호흡’을 나누고, ‘중’과 ‘중간’을 구별하면서 숨죽임을 들숨과 날숨 사이의 짧은 틈 하나로만 보지 않습니다.
「숨죽인 가운데 호흡하느냐 호흡과 호흡 사이에 숨죽임이 있는가?」에서는 숨죽임을 호흡 사이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공백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늘 함께 있는 고요한 바탕으로 밝힙니다. 숨죽임이 체라면 호흡은 그 위에서 움직이는 용이며, 정중동과 동중정이 동시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오래 숨을 참는 훈련’으로 읽으면 전체를 놓칩니다. 전반에서는 실제 숨을 멈추는 방편을 강하게 쓰지만, 뒤에서는 평소에도 이미 고요한 바탕 가운데 숨 쉬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죽음이라는 말도 자주 나오지만 육체를 죽이는 지시가 아닙니다. 여러 글에서 죽어야 할 것은 몸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에 매달려 주인 노릇하던 에고라고 밝힙니다. 숨죽임의 정지를 ‘죽음’, 움직이는 호흡과 생활을 ‘생’에 놓아 생사일여를 수행의 언어로 풉니다.
숨죽여봄은 생각을 비운 뒤 다시 생각·말·행동을 새롭게 쓰게 합니다. 모르는 자리에서 필요한 생각을 내고, 말을 꾸며내기보다 지금 보이는 만큼 말하며, 몸동작을 보면서 즉시 조절합니다.
「숨죽여봄 수행법(3)」에서는 무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몸을 하늘에 맡겨 저절로 돌아가는 호흡을 충분히 보고 무위를 익히지만, 무위가 익은 뒤에는 의도적인 호흡과 행동인 유위도 다시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유위를 버리고 무위만 지키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정할 때와 동할 때의 수행」에서는 정과 동의 수행을 한 쌍으로 세웁니다. 정할 때는 숨죽여봄으로 고요하고 뚜렷한 적적성성의 본심을 확인하고, 동할 때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즉시 보고 알고 살핍니다.
「도는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데에 있다」에서는 깨달음의 소유보다 실제 기능을 앞세웁니다. 정신을 먼저 깨달았다고 말해야만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몸과 마음을 실제로 보살피고 살리는 일이 곧 정신의 기능이고 도의 실행입니다.
몸 전체와 생각·감정을 한눈에 보고 즉시 알아차리는 기량은 한 번의 체험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천번 만번 써야 민첩하고 정확해집니다. 급한 순간에도 깨어살겠다는 옵션이 맨 먼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떠돌이 별에서 붙박이 별로 진화발전합시다」에서는 숨죽여봄으로 새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이미 숨죽인 고요 가운데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늘 있었던 평상심과 정신의 광명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 광명을 알았으면 다시 몸과 마음에 써야 합니다. 목·팔·허리·다리의 움직임과 생각·감정이 움직이는 순간을 보고,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사이의 틈이 없어질 만큼 즉각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정신의 광명으로 몸과 마음의 실제 움직임을 비춥니다.
마지막에는 정신의 체성과 위력을 분명히 나눕니다. 정신의 체성은 본태양의 빛과 열기이고, 정신의 위력은 숨죽여봄과 돌아봄으로 그 빛과 열기를 몸과 마음에 실제로 쓰는 힘입니다. 몸의 온기, 마음의 밝음, 순한 눈빛으로 그 작용을 확인합니다.
원문에는 질병 예방·치유, DNA 변화, 무병장수까지 연결하는 강한 효능 주장도 나옵니다. 이것은 이 책의 수행 체계 안에서 제시된 원문의 주장으로 읽어야 하며, 현대 의학에서 검증된 치료 효과와 같은 것으로 섞어 소개할 수 없습니다.
책의 끝에서는 몸이 훈훈한가, 마음이 밝은가, 눈이 순한가를 묻습니다. 정중의 숨죽여봄과 동중의 돌아봄을 이어 머리에서 안 빛이 몸 전체의 온기와 안정으로 내려왔는지를 생활에서 점검합니다.
마지막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에서는 안의 영성과 밖의 물성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정신의 빛과 열기로 몸과 마음을 비추며 살아가는 만족의 삶으로 책을 맺습니다.
《숨죽여봄》은 숨을 멈추는 한 가지 기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감각·생각의 합작을 다시 세우고, 허공·광명·인당·백회·하단전을 거쳐 숨죽여봄으로 견성·양성·솔성을 익힙니다. 마침내 숨죽임을 호흡과 행동 속에 늘 함께 있던 고요한 바탕으로 다시 보고, 무위를 바탕으로 유위의 호흡·생각·말·행동까지 실제로 씁니다.
이런 때 읽어보세요
왜 《숨죽여봄》은 처음부터 숨죽여봄만 설명하지 않는지 궁금할 때
정신·몸·마음은 이 책에서 어떤 관계로 설명되는지 알고 싶을 때
몸을 늘보는 것만으로는 왜 지혜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하는지 궁금할 때
허공·진공묘유·인당·백회가 숨죽여봄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고 싶을 때
숨죽여봄으로 견성·양성·솔성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
숨죽여봄은 단순히 숨을 오래 참는 훈련인지 알고 싶을 때
생명의 호흡과 목숨의 호흡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궁금할 때
왜 이 책은 숨죽임과 죽음을 연결해 말하는지 알고 싶을 때
정할 때와 동할 때 수행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을 때
깨달음보다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
무위에서 다시 유위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을 때
정신의 체성과 위력, 몸의 온기·마음의 밝음·눈빛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할 때
질문으로 읽기
이 책을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숨죽여봄》은 어떤 책인가요?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감각·생각의 합작, 허공·진공묘유·인당·백회·하단전을 충분히 다룬 뒤 75번째 글부터 숨죽여봄을 본격적으로 씁니다. 처음에는 실제 숨죽임으로 중심을 잡아 견성·양성·솔성을 익히고, 뒤에서는 숨죽임을 들숨과 날숨에도 늘 함께 있는 고요한 바탕으로 밝힙니다. 그 무위를 바탕으로 다시 유위의 호흡·생각·말·행동까지 자유롭게 부리고 씁니다.
숨죽여봄을 하기 전에 무엇을 중심으로 삼고 무엇을 부리고 써야 하는지부터 다시 세우기 때문입니다. 전반 74편은 정신·몸·마음의 역할, 몸의 균형과 수신, 감각과 생각의 합작, 허공과 진공묘유, 인당·백회·하단전 등을 거쳐 숨죽여봄이 들어갈 자리를 만듭니다. 그래서 숨죽여봄은 앞의 공부와 떨어진 별도 호흡법이 아니라 그 흐름 위에서 드러납니다.
숨죽여봄에 들어가기 전에 본질과 현상을 둘로 보지 않는 눈을 먼저 넓힙니다. 허공과 그 안의 광명을 하나로 보고, 인당을 통해 좌우의 분열을 통하고 백회를 통해 몸 안과 밖의 공간을 하나로 연 뒤 하단전에 중심을 잡습니다. 숨죽여봄은 이 넓어진 하늘에 중심을 세우는 수행입니다.
아닙니다. 앞에서는 실제 숨을 멈추는 방편을 강하게 쓰지만, 「숨죽인 가운데 호흡하느냐…」에서는 숨죽임을 들숨과 날숨 사이의 짧은 정지가 아니라 호흡하는 동안에도 늘 함께 있는 고요한 바탕과 중심으로 밝힙니다. 뒤에서는 평소에도 이미 그 바탕 가운데 호흡하고 생각하고 행동해 왔음을 자각합니다. 따라서 책 전체를 오래 숨을 참는 실행 지침으로 줄이면 안 됩니다.
처음에는 몸과 호흡을 억지로 조작하려 하지 않고 저절로 돌아가는 호흡과 몸의 작용을 충분히 보고 익히는 무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숨죽여봄 수행법(3)」에서는 그 무위가 익은 뒤에는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호흡과 행동도 같은 중심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위를 버리는 것이 완성이 아니라 무위를 바탕으로 유위까지 자유롭게 쓰는 것이 완성이라는 전환입니다.
반드시 그런 순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는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데에 있다」에서는 정신을 깨달았다고 해도 몸과 마음을 보살피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 것과 같고, 정신을 말로 알지 못해도 실제로 몸과 마음을 보살피며 살면 정신의 기능을 이미 쓰고 있다고 봅니다. 정신의 개념보다 비춤과 돌봄의 실제가 중요합니다.
「떠돌이 별에서 붙박이 별로 진화발전합시다」에서는 숨죽여봄으로 새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이미 고요한 바탕 가운데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 왔음을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그 고요하고 밝은 평상심을 알았으면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즉시 비추어 실제 생활에서 계속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신의 체성을 본태양의 빛과 열기에 비기고, 그 빛과 열기로 몸과 마음을 비추어 실제로 쓰는 힘이 위력입니다. 몸의 온기와 마음의 밝음, 눈빛의 안정으로 그 작용을 나타내며 질병 치유 같은 강한 효능 주장도 나옵니다. 이런 치유·건강 효과는 원문에 기록된 수행 체계의 주장이지 현대 의학의 검증 결과와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숨죽여봄과 돌아봄으로 정신의 빛과 열기를 몸과 마음에 실제로 쓰고, 그 작용이 몸의 온기·마음의 밝음·눈빛의 안정으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합니다. 마지막에는 안의 영성과 밖의 물성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정신의 빛과 열기로 몸과 마음을 비추며 만족하게 사는 삶으로 맺습니다.
133개 목차 항목 가운데 아래 열세 편을 먼저 읽어보세요. 정신·몸·마음의 역할에서 시작해 감각과 생각의 합작, 허공과 인당·백회, 숨죽여봄의 견성·양성·솔성, 숨죽임의 재정의, 무위와 유위, 정중·동중 수행, 평상심, 정신개벽의 체성과 위력, 마지막 점검까지 책의 실제 진행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지구와 달 몸과 마음의 관계
정신·몸·마음을 태양·지구·달에 비기고, 마음이 몸을 비추면서 몸의 움직임을 보완하는 역할까지 풀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