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완성》에서 열린 감각의 눈이 생각·감정·오감을 부리고 쓰는 힘이 되고, 그 힘이 행복을 창조하고 나누는 사랑의 실력으로 펼쳐집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을 끝까지 듣고,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며, 마지막에는 자기 안의 미움과 거부부터 보고 비워 사랑을 생활에서 씁니다.
《사랑의 완성》은 《사람의 완성》과 《삶의 완성》에서 이룬 공부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힘으로 펼칩니다. 자기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감각의 눈으로 세상을 구경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눈과 힘을 사람에게 씁니다.
첫 글 「소승에서 대승으로」에는 제1권부터 제8권까지의 흐름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생각본위에서 감각본위로 전환하여 사람을 완성하고, 감각의 눈이 열려 본질과 현상을 보고 누리는 삶의 완성에 이른 뒤, 그 눈을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의 실력으로 씁니다. 자기가 누린 기쁨과 행복을 남과 나누고 가이드하는 데까지 되어야 사랑의 완성, 대승입니다.
초반에는 좌뇌본위 생각위주에서 우뇌본위 감각위주로의 전환을 다시 확인합니다. 생각의 호오와 분별에 따라 일부만 보던 데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사람과 사물을 넓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뇌 한쪽에 머물지 않습니다. 감각이 주도권을 되찾은 뒤 생각을 다시 살려,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두 기능이 함께 일해야 합니다.
사랑도 처음부터 호감이나 따뜻한 감정 하나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밝음만 좋아하고 어둠을 싫어하는 편향을 넘어서 밝음과 어둠을 함께 보고, 사람의 얼굴도 자기 취향의 미추와 호오로 재기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있는지를 보고 들으려 합니다.
그 바탕에는 생각·감정·오감을 부리고 쓰는 주체성이 있습니다. 감각이 생각을 이겼다는 말은 생각을 없앴다는 말이 아닙니다. 둘로 갈라져 다투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하나마저 텅 비는 2→1→0을 거쳐, 생각도 감정도 오감도 필요에 따라 꺼내 쓰고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부리고 쓰는 주인을 소우주의 주인이라 하고, 오감이 하나로 열려 천지만물을 보고 누리는 데까지 눈이 넓어지면 대우주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보이고 들리는 천지만물을 자기와 떨어진 남의 것으로만 보지 않고 자기 안에 들어온 창조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며, 천지만물을 자기 새끼처럼 바라보는 데까지 사랑의 범위를 넓힙니다.
중간의 큰 전환은 텅빔에서 멈추지 않는 데 있습니다. 텅빔 그 자체에는 행복과 불행의 구별도 없습니다. 그 텅 빈 바탕에서 신비와 아름다움과 기쁨을 창조하고 누릴 때 삶의 보람과 행복과 사랑이 생깁니다. 본질을 깨닫는 일과 현상을 창조하고 누리는 일이 여기서 다시 하나가 됩니다.
행복도 밖에서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과 사랑」에서 행복은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려고 애써 감정을 만들어내기보다 감각이 열려 자기와 천지만물의 관계가 달라지면 사랑이 흘러나오고, 그 사랑을 쓰는 가운데 행복이 따라옵니다.
「사랑은 광명이다」와 「광명이 사랑임을 깨달을 때」에서는 사랑을 빛·에너지·열기이며 본태양의 광명이라고 합니다. 본연의 자기·대아·영성·본질과 사랑을 같은 자리에서 보고, 우주만유를 창조하고 운행하는 힘까지 사랑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큰 관념으로만 남겨두지 않습니다. 봉사와 기부의 형식보다, 텅 빈 데서 흘러넘쳐 베풀고도 ‘내가 주었다’는 생각과 유세와 공치사가 남지 않는지를 봅니다. 사랑은 외형보다 그 행위를 낳는 자리와 뒤에 남는 마음으로 드러납니다.
중후반의 사랑은 말·행동·표정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의식 수준은 목소리와 얼굴과 몸짓으로 밖에 나타납니다. 자기 말소리를 듣고 몸동작과 표정을 알아차리면서, 말과 행동이 진실하고 밝고 고요하게 나오도록 실제 생활에서 닦습니다.
사람 사이에서는 소통·화해·섬김이 중요해집니다. 자기 수준에서 자기 말만 밀어붙이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필요하면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바꿉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으로 공경하면서 그 사람이 스스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섬김입니다.
특히 경청은 사랑의 핵심으로 반복됩니다. 자기 말부터 하고 싶은 욕구가 보이면 입이 조용해지고 귀가 열립니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 자르거나 딴생각으로 빠지지 않고, 거부와 저항 없이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바로 베풀 수 있는 큰 사랑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에서는 더 단순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그 얼굴을 보아주고,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그 존재를 인정합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얼굴을 보지 않고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자기 말만 이어가면 상대를 실제로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듣기만 한다고 사랑의 실력이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실력이다」에서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정확하게 답하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네 살 아이에게 말할 때는 자기 수준의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내려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못 들을 말이 없어야 하지만 못 할 말도 없어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은 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되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자기 의견을 말한 뒤 받아들이고 말고는 상대의 몫이므로, 억지로 설득하거나 심판하며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표제 글 「사랑의 완성」에서 사랑의 방향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남에게 잘하려고 애쓰기 전에 남을 거부하고 미워하는 자기 안의 움직임부터 봅니다. 미움을 억지로 눌러 착한 사람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 미움을 보고 알고 비우면 사랑하려는 생각을 따로 내지 않아도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랑의 완성은 ‘나는 사랑한다’는 생각이나 말의 완성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미움과 거부를 놓치지 않고 보고, 그 자리가 비워진 가운데 상대를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생활에 자리잡는 것입니다.
표제 글 뒤에는 사랑을 별도의 덕목으로 떼어놓지 않고 교학과 수행, 생각과 감각, 진아와 가아의 전체 관계 안에서 다시 봅니다. 감각이 주인이 되어 생각을 거느리고 다스리고 부리고 쓰며, 마지막에는 미워하는 생각을 감각해보는 문제로 돌아와 사랑을 전체 봄공부 안에 놓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감각의 눈을 뜬 사람이 자기 안에서 편안하게 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각·감정·오감을 부리는 힘을 행복의 창조, 말과 표정, 경청과 소통, 섬김과 화해로 펼치고, 끝내 자기 안의 미움까지 감각하여 다른 사람과 실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의 실력으로 만듭니다.
이런 때 읽어보세요
사랑과 행복의 관계를 이 책은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할 때
왜 사랑을 광명·에너지·열기라고 하는지 알고 싶을 때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사랑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할 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을 왜 사랑이라고 하는지 궁금할 때
“사랑은 실력이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을 때
자기 안의 미움을 보는 것이 왜 사랑의 완성과 관련되는지 궁금할 때
생각과 감각, 가아와 진아를 이 책이 어떻게 구별하는지 알고 싶을 때
질문으로 읽기
이 책을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어떤 책인가요?
《사람의 완성》과 《삶의 완성》에서 열린 감각의 눈과 몸·마음의 주인됨을 사람과 세상에 실제로 쓰는 책입니다. 생각·감정·오감을 부리고 쓰는 힘, 행복을 창조하는 힘, 광명으로서의 사랑, 경청·소통·섬김의 실력을 거쳐 마지막에는 자기 안의 미움과 거부를 보고 알아차려 비우는 데서 사랑의 완성을 밝힙니다.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본 사람이 자기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상대의 자리까지 내려가 눈높이를 맞추어 말하고 듣고 나누며 소통하는 것이 섬김입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으로 공경하면서 상대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극한 사랑입니다.
남을 사랑하려 하기 전에 남을 거부하고 미워하는 자기 안의 반응부터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억지로 누르지 않고 일어난 미움을 감각하여 비우면, 사랑하려는 생각 없이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마지막 「교학의 완성」에서도 미워하는 생각을 감각해보는 일을 사랑과 바로 연결합니다.
좌뇌본위 생각위주에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과 관념에 따라 세상을 일부만 보기 쉽고, 우뇌본위 감각위주에서는 지금 여기의 사물과 사람을 더 넓게 받아들입니다. 그 뒤 감각이 주인이 되어 생각을 다시 거느리고 좌뇌와 우뇌를 함께 쓰며, 그 힘이 소통·경청·사랑의 실력으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