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함을 피하지 않고 진공·정신과 직접 마주하며, 책읽기·바르게 앉기·일상생활의 세 수행으로 감각과 생각, 몸과 마음을 하나로 꿰뚫습니다. 깨달음을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새 발견으로 살리고, 마지막에는 정신이 몸과 마음에 공덕을 지어 실제로 부리고 쓰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정확히 답하는 사랑과 자비의 실력까지 갖춥니다.
《깨달음의 완성》은 세 가지 수행을 한데 모으며 시작합니다. 책으로 하는 낭독, 바르게 앉아 정신을 차리는 수행, 일상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놓치지 않는 수행입니다. 책 속에서 이해한 깨달음을 실제 생활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처음부터 중심에 놓입니다.
앞부분에는 뜻밖에도 ‘심심함’이 여러 번 나옵니다. 심심해서 밖으로 달아나고 싶어지는 순간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만나면,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는 진공과 본연의 자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자극으로 빈자리를 채우기보다 그 빈자리를 직접 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심심함을 억지로 참고 버티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밖으로 달려나가는 원심력에 밀리지 않을 만큼 안으로 모아들이는 구심력이 필요합니다. 책읽기와 몸·마음 돌아봄으로 감각의 힘을 길러 안으로 중심을 잡습니다.
암흑의 하늘과 광명의 하늘, 어두우면서 밝고 밝으면서 어두운 하늘을 차례로 보며 정신의 명암을 직접 확인합니다. 정신을 말로 정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안에서 실제로 보고 아는 문제가 됩니다.
그 정신은 몸과 마음을 실제로 다스리는 데 쓰입니다. 몸과 마음이 어두워질 때는 밝힘을 쓰고, 근심·걱정·불안·공포나 판단·평가·심판이 치솟을 때는 비움과 고요를 씁니다. 정신의 명암을 상황에 맞게 부리는 힘이 생활 속 다스림이 됩니다.
한 번 본 것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순경계에서는 성공과 칭찬에 들떠 평상심을 놓치고, 역경계에서는 비판과 욕설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잠깐 본 자리를 늘봄으로 길러 어떤 경계에서도 평상심의 힘이 실제로 서야 합니다.
깨달음을 과거의 특별한 기억으로 만들어 붙잡지 않습니다. 예전에 본 광명의 하늘을 기억으로 재현하려는 순간 이미 관념이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한 생각 이전의 자리를 감각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모르는 자리’가 중요합니다. 이미 안다고 여기는 순간 과거의 답과 색안경이 앞서지만, 모르는 자리에서는 생각이 비어 지금 있는 것을 새로 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저장해둔 정답을 꺼내는 일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발견하는 일입니다.
생각을 억지로 때려눕혀 감각이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으로 행복해지고 편안해지려는 방편을 끝까지 써보고 그 한계를 직접 겪으면서, 생각의 작략이 스스로 힘을 잃고 감각에게 자리를 내주는 바통터치가 일어납니다.
그 뒤 생각은 없어져야 할 적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생각은 내지 않고 필요한 생각은 내어 씁니다. 감각이 중심을 잡은 뒤 생각이 제 기능을 되찾아야 몸과 마음을 실제로 움직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본질과 현상이 다시 한 시야에 들어옵니다. 지금 여기의 몸과 사물은 육안과 육감으로 보고, 보이지 않는 무한 공간과 변하지 않는 바탕은 영안과 영감으로 봅니다. 현상을 흐릿하게 버린 채 본질만 찾는 것이 아니라, 육안과 오감이 먼저 제대로 열려 현상이 선명해야 본질과 현상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무한한 공간과 유한한 현상, 영원과 찰나는 둘로 갈라진 세계가 아닙니다. 유한한 현상 안에 무한한 공간이 있고 찰나 안에 영원이 함께 있습니다. 깨달음은 현상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본질과 현상을 동시에 보는 안목입니다.
책읽기 낭독에서는 눈으로 글자를 보고 입으로 정확히 읽고 귀로 자기 소리를 들으면서 뜻까지 이해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각·청각·감각·생각이 따로 노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낭독 자체가 두 기능의 협조를 확인하고 기르는 수행입니다.
좌뇌와 우뇌 사이의 뇌량도 감각계발과 연결됩니다. 좌뇌의 생각이 우뇌의 감각을 누르는 한쪽 통행에서 벗어나, 우뇌의 감각이 좌뇌의 생각까지 감지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양쪽 기능이 서로 통해야 합니다.
낭독은 글자를 틀리지 않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들으며 반복해서 읽고 뜻이 환하게 들어올 때까지 감각과 생각을 함께 씁니다. 그렇게 읽는 가운데 남의 문장을 읽으면서도 본연의 자기 목소리가 살아납니다.
후반에는 진공묘유, 이기론, 감각과 생각, 제로·하나·둘, 본심·무심·일심, 정신의 체와 용이 다시 하나의 구조로 모입니다. 앞에서 몸과 생활로 확인한 것을 성리의 말로 다시 정리하면서 각 말이 어디에 놓이는지 분명해집니다.
「본심과 무심과 일심」에서 무심은 무한공간이고, 일심은 그 공간에 가득한 하나의 기운과 광명이며, 둘로 갈라지기 이전의 하나가 본심·정신·봄입니다. 제로의 텅빔과 하나의 뚜렷한 힘은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의 결론은 성리 설명에 머물지 않습니다. 정신이 몸의 움직임과 아픔을 계속 감각하여 고단하면 쉬게 하고 차가우면 덥히고 약하면 운동시키며 실제로 돌봐야 합니다. 몸의 주인이라는 말은 몸을 함부로 명령하는 권한이 아니라 몸을 살리고 키우는 책임으로 바뀝니다.
마음도 같습니다. 조건반사적으로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면 바로 보고 알아 비우고 평정을 회복합니다. 그 뒤 필요하면 생각을 내고 필요하지 않으면 내지 않습니다. 마음을 부리고 쓴다는 말이 생활에서 이렇게 구체화됩니다.
「수행은 정신이 몸과 마음에 대하여 공덕을 짓는 일입니다」에서는 정신이 몸과 마음을 억눌러 복종시키는 대신 먼저 몸을 돌보고 마음을 보살피며 공덕을 짓습니다. 수행은 주인이 몸과 마음을 살리고 길러 서로 호응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 공덕이 오래 쌓여야 몸과 마음도 정신의 수족이 되어 자연스럽게 호응합니다. 주인은 명령부터 하는 자리가 아니라 먼저 베풀고 돌보는 자리입니다. 몸과 마음을 거느리고 다스리고 부리고 쓰는 힘은 그런 관계가 익은 뒤에 생깁니다.
마지막에는 깨달음·깨달음의 경지·깨달음의 완성을 다시 나눕니다. 구심력이 원심력을 이겨 중심에 도달하면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아도 밖으로 휩쓸리지 않는 균형이 생기고, 그 중심을 축으로 원심력과 구심력이 한 원운동으로 돌아가면서 필요에 따라 삶의 줄을 풀고 감을 수 있게 됩니다.
표제 글 「깨달음의 완성」은 자기 안의 평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이 몸과 마음을 거느려 삼위일체가 되고, 남의 말을 들을 때 자기 에고로 곡해·오해·비난하지 않고 진실하게 들으며, 상대의 기울고 흐트러진 마음이 중심을 찾도록 정확하게 말하고 가이드합니다.
깨달음의 완성은 결국 듣고 말하는 능력, 소통과 공감, 다른 사람을 품고 키우는 사랑과 자비의 실력으로 드러납니다. 자기 중심만 지키는 깨달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기 중심을 찾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후기에는 왜 책이 열한 권까지 길어졌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처음부터 중요한 내용은 있었지만 독자들이 책으로 이해하는 데 머물고 생활 수행으로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묻고 답하며 책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낭독과 이해는 생활 수행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깨달음의 완성》은 깨닫는 순간을 설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기억과 관념에서 꺼내 지금 여기의 감각으로 살리고, 정신이 몸과 마음에 공덕을 지어 실제로 거느리고 부리고 쓰며, 마침내 사람의 말을 듣고 답하고 돕는 힘으로 펼쳐내는 책입니다.
이런 때 읽어보세요
심심함을 피하지 않으면 왜 깨달음과 만난다고 하는지 궁금할 때
깨달음이 기억이 아니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감각이 생각을 이긴 상태를 이 책은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할 때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각을 억지로 멈추지 말라는 이유가 궁금할 때
낭독이 왜 감각계발의 핵심이라고 하는지 알고 싶을 때
본심·무심·일심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궁금할 때
정신이 몸과 마음을 거느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책 제목인 “깨달음의 완성”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할 때
질문으로 읽기
이 책을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완성》은 어떤 책인가요?
심심함을 피하지 않고 진공·정신을 직접 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책읽기·좌정·일상생활이라는 세 가지 수행으로 감각과 생각, 몸과 마음을 하나로 꿰뚫습니다. 깨달음을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감각으로 살리고, 마지막에는 정신이 몸과 마음을 돌보고 거느린 뒤 사람의 말을 바르게 듣고 답하며 다른 사람을 품고 키우는 사랑과 자비의 힘까지 갖추는 것이 깨달음의 완성입니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낭독 수행, 바르게 앉아 하단전에 의식을 두고 몸과 마음의 흐트러짐을 보는 좌정 수행,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지 쉬는지를 계속 알아차리는 생활 수행입니다. 세 가지 모두 집중력과 정신력을 길러 몸과 마음을 놓치지 않는 데 목적을 둡니다.
심심함을 자극이 없는 결핍이 아니라 에고가 비어 있는 진공과 마주치는 순간으로 봅니다. 심심함을 느끼자마자 밖의 놀이와 자극으로 달아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대아·정신·진공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밖으로 달아나는 원심력을 이길 구심력이 길러져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몸과 주변 현상을 오감으로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본질만 찾으면 다시 관념이나 이미지에 빠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육안과 오감이 살아 지금 여기의 현상이 명료하게 들어온 뒤, 그 현상을 품은 무한공간과 변하지 않는 본질을 영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자기 안에서 중심을 잡고 몸과 마음을 거느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들을 때 자기 에고로 곡해·오해·비난하지 않고 진실하게 듣고, 상대의 기울고 흐트러진 마음이 중심을 찾도록 정확하게 말하고 가이드하여 소통·공감·감동이 일어나게 하는 데까지 포함합니다. 다른 사람을 품고 키우는 사랑과 자비의 실력까지 갖추어야 깨달음이 완성됩니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생활 수행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기에서는 제1권부터 핵심 내용은 이미 있었지만 사람들이 책 공부에 머물러 계속 질문이 이어졌다고 되짚습니다. 열한 권을 반복 낭독하여 집중력을 기르고, 그 힘이 실제 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보는 수행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