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깨어나 살자꾸나!》는 어떤 책인가요?
몸과 마음을 자기라고 여기며 생각에 끌려 사는 상태를 ‘꿈’으로 보고, 세상과 남을 고치기 전에 우선 자기부터 깨어나는 데서 시작합니다. 몸동작·말소리·생각·감정을 직접 보고, 돌아봄·바라봄·늘봄과 합일을 거쳐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부리고 쓰는 주인으로 자라가는 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종이책 · 봄 책
세상과 남을 고치기 전에 우선 나부터 꿈에서 깨어납니다. 밖만 보던 눈을 자기에게 돌려 몸동작·말소리·생각·감정을 보고 알고, 돌아봄·바라봄·늘봄과 합일을 거쳐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어 다스리고 부리고 쓰는 첫 대장정입니다.
ISBN 9788994614144
정가 40,000원
책 소개
《한번 깨어나 살자꾸나!》는 “남을 깨우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몸과 마음을 자기라고 여기고, ‘나’라는 생각에서 나와 너·옳고 그름·성공과 실패의 세계가 펼쳐져 거기에 끌려 사는 상태가 꿈입니다. 세상이나 남을 고치기 전에 먼저 자기가 누구인지 직접 보아야 합니다.
그 시작은 특별한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할 때, 불안하고 두려울 때, 화가 나고 위로받고 싶을 때 바로 그 마음을 피하지 않고 봅니다. 불편한 마음을 없애려고 또 다른 생각을 보태는 대신, 지금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보고 압니다.
밖의 사물과 사람만 보던 눈을 자기에게 돌립니다. 걷는 몸동작을 보고, 자기 말소리를 듣고, 표정과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줄 압니다. 밖을 보는 육안과 함께 자기를 보는 제3의 눈·심안·영안이 떠져야 자기가 보이고, 자기가 보여야 자기를 알고, 자기를 알아야 자기를 고칠 수 있습니다.
처음 돌아봄을 시작하면 밖을 보는 힘은 강하고 안을 보는 힘은 약하여 자꾸 놓칩니다. 놓치면 다시 잡고 또 놓치면 다시 잡습니다. 안을 보는 힘이 밖을 보는 힘과 대등해지면 밖을 보면서 안을 보고 안을 보면서 밖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여기서 돌아봄이 바라봄으로 바뀌고, 바라봄이 끊어지지 않아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이어지면 늘봄입니다.
자기를 본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또 다른 생각으로 판단·평가·심판하는 일이 아닙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한 생각을 싫어하여 억누르고 거부하고 저항하는 뒷생각이 꼬리를 물면 분열과 괴로움이 커집니다. 일어난 생각을 그대로 보고 알아 꼬리를 더 달지 않을 수 있어야 생각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생각을 없애는 것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생각을 내기만 하고 끌려가던 자리에서 벗어나, 생각을 낼 때는 내고 거둘 때는 거두고 멈출 때는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의 주인이 되고, 몸과 마음도 버리지 않고 거느리고 돌보고 다스리고 부리고 씁니다.
소아를 버리고 대아로 거듭난다는 말도 한 자리에 멈춰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시간과 공간에 한정된 몸과 생각을 자기라고 여기던 소아의식을 버리고 대아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뒤로 가면 소아는 없어져야 할 적이 아니라 대아의 품으로 돌아와 주시자의 역할을 맡고, 대아는 소아와 몸과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고 살리고 성숙시키는 주인이 됩니다.
깨달음의 체험과 깨달음의 능력은 다릅니다. 원아 유종열님은 자동차 사고와 넘어지는 순간에 아무 생각과 감정 없이 담담하게 바라보는 체험을 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다시 놓쳤다고 적었습니다. 오랜 자아탐구 끝에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하나가 되는 합일을 체험한 뒤에도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다루는 힘은 곧바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는 능력과 행하는 능력은 다른 차원입니다.
자기를 깨닫기는 쉬워도 깨달음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순간 자기를 잡아도 다시 놓치면 깨닫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잡았다 놓쳤다 하는 일이 사라져 더 이상 일부러 잡지 않아도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증득이라고 합니다.
합일에 이르는 길도 단번에 한 단계로 묶이지 않습니다. 먼저 몸돌아봄으로 움직일 때와 고요할 때 몸을 놓치지 않는 동정일여를 익히고, 마음돌아봄으로 낮과 밤의 생각·느낌·감정에 깨어 있는 몽중일여를 거칩니다. 그 뒤 본격돌아봄으로 안을 향해 파고들어 오매일여에 이르러도 보는 자기와 보이는 자기가 남아 있으면 아직 둘입니다. 끝까지 파고들던 보는 자가 사라져 보는 자기와 보이는 자기가 하나가 될 때 합일이며 초견성입니다.
합일은 끝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시작입니다. 합일하여 몸과 마음의 주인임을 알아도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부리고 쓰는 힘은 아직 부족할 수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말을 배우듯, 합일 뒤에는 바라봄으로 몸과 마음을 길들이고 다스리는 힘과 기술을 길러야 합니다. 바라봄이 늘봄이 되고 몸과 마음이 거부와 저항 없이 함께 움직일 때 상견성·무심에 이릅니다.
일심과 무심도 서로 다른 자리를 가리킵니다. 상반된 두 생각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한마음이 일심이고, 돌아봄으로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걷어잡아 일심이 된 뒤 그 일심이 지속되어 일심마저 사라진 자리가 무심입니다. 그렇게 증득한 무심에서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생각을 부리고 쓰는 자유가 생깁니다.
좌뇌는 시간과 생각을 굴리는 능력이고, 우뇌는 공간과 감각을 깨닫는 능력입니다. 생각에 의존하는 좌뇌본위의 삶에서 몸과 마음 돌아봄으로 감각을 깨우고, 좌뇌와 우뇌의 분열을 합일하여 안과 밖을 한 공간으로 봅니다. 생각의 꼬리가 떨어진 뒤에는 좌우가 함께 작동하여 생각을 자유자재하게 구사하는 지혜를 씁니다.
‘봄’은 몸과 마음을 비추고 운행하는 정신·얼·영과 연결됩니다. 정신을 태양, 몸을 지구, 마음을 달에 견주고, 태양이 지구와 달을 비추고 운행하듯 봄으로 몸과 마음을 비추고 운행합니다. 몸과 마음을 자기로 알던 자리에서 벗어나 봄이 자기의 근본임을 깨닫고, 마침내 태양까지 거느리는 우주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본태양’이라고 부릅니다.
안을 보는 공부는 사람을 대하는 눈도 바꿉니다. 남을 좋다 나쁘다 심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며 이해하려 하고, 상대 때문에 생겼다고 여기던 속상함과 미움도 자기 안에서 일어난 생각과 반응으로 돌아봅니다. 자기 안의 아픔·외로움·짜증·미움을 밀어내지 않고 보고 보살피는 일이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힘이 됩니다.
합일 뒤에는 자연을 바라봅니다. 산과 들, 강과 바다, 하늘과 나무와 사람을 밖에 떨어진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안팎이 하나로 열린 자리에서 바라봅니다. 자연이 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함께 들어오고, 자연과 문명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받아들이고 쓰는 눈을 기릅니다.
마지막까지 되돌아오는 기준은 생활입니다. 몸이 움직이는 줄 아는가, 자기 말소리를 듣는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줄 아는가, 한 생각을 냈으면 다시 거두어들일 수 있는가, 안을 보면서 밖을 보고 사람과 자연을 보면서도 자기를 놓치지 않는가가 실제 공부의 기준입니다.
《한번 깨어나 살자꾸나!》는 ‘우선 나부터’ 꿈에서 깨어나는 데서 시작해 돌아봄·바라봄·늘봄, 합일과 증득, 대아와 소아, 일심과 무심, 생각과 감각, 본태양, 몸과 마음의 주인까지 차례로 밟습니다. 한번 깨어남은 마지막 장면이 아닙니다. 깨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부리고 쓰며 살아가는 생활의 시작입니다.
질문으로 읽기
몸과 마음을 자기라고 여기며 생각에 끌려 사는 상태를 ‘꿈’으로 보고, 세상과 남을 고치기 전에 우선 자기부터 깨어나는 데서 시작합니다. 몸동작·말소리·생각·감정을 직접 보고, 돌아봄·바라봄·늘봄과 합일을 거쳐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부리고 쓰는 주인으로 자라가는 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잠잘 때 꾸는 꿈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자기라고 동일시하고 생각이 만들어내는 나와 너, 선악, 승패, 소유의 세계에 끌려 사는 상태를 꿈이라고 합니다. 자기에게서 그 구조를 직접 보고 생각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어남의 출발입니다.
밖의 사물과 사람만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의 몸동작·생각·감정·느낌까지 보는 눈입니다.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자기에게 돌려 자기를 직접 보고 아는 능력을 제3의 눈, 심안, 영안이라는 말로 여러 자리에서 풀어냅니다.
돌아봄은 밖으로만 나가던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리는 단계입니다. 놓치고 다시 잡기를 거듭해 안과 밖을 함께 볼 수 있게 되면 바라봄이 됩니다. 바라봄이 끊어지지 않아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계속되고 생각과 감정에 자유자재해지면 늘봄입니다.
몸돌아봄으로 동정일여, 마음돌아봄으로 몽중일여를 거친 뒤 본격돌아봄을 합니다. 오매일여에 이르러도 보는 자기와 보이는 자기가 남아 있으면 아직 합일 전입니다. 줄기차게 파고들던 보는 자가 사라져 둘이 하나가 될 때 합일이며 초견성입니다.
원문: 봄공부의 수행 3단계 ↗ · 합일의 과정 (2) ↗
끝나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고요하고 담담한 깨달음의 체험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다시 놓칠 수 있고, 합일을 해도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부리는 힘은 곧바로 생기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체험, 합일, 증득, 합일 이후의 바라봄과 늘봄은 서로 다른 과정입니다.
원문: 놓친 자기 다시 잡기 ↗ · 깨달음의 체험 ↗ · 합일 이후 ↗ · 합일의 과정 (2) ↗
합일은 새로 태어난 시작에 가깝습니다. 몸과 마음의 주인임을 알아도 아직 몸과 마음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합일 뒤에는 바라봄으로 몸과 마음을 길들이고 다스리는 힘과 기술을 익힙니다. 그것이 깊어져 늘봄으로 자리잡아야 명실상부하게 몸과 마음을 부리고 쓸 수 있습니다.
원문: 봄공부의 수행 3단계 ↗ · 합일 이후 ↗ · 바라봄의 수행 단계 ↗
상반된 두 생각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한마음을 일심이라 합니다. 돌아봄으로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걷어잡아 일심이 되고, 그 일심이 지속되어 일심마저 사라지면 무심입니다. 그렇게 증득한 무심에서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생각의 주인이 되어 생각을 부리고 쓸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몸과 생각을 자기라고 여기는 소아의식을 버리고 대아로 거듭나야 한다고 합니다. 뒤로 가면 소아를 없애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아가 주인이 되어 소아와 몸과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고 살리고 성숙시키며, 소아는 주시자의 자리에서 대아의 살림을 돕습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한 생각에 또 한 생각을 붙여 판단하고 억누르고 싸우면서 꼬리가 이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어난 생각을 보고 알아 꼬리를 끊고, 필요할 때는 생각을 내고 거두고 멈출 수 있어야 생각의 주인입니다.
원문: 생각의 꼬리가 떨어져야 ↗ · 한 생각 ↗ · 생각과 돌아봄 ↗
좌뇌를 시간과 생각을 굴리는 능력, 우뇌를 공간과 감각을 깨닫는 능력으로 둡니다. 좌뇌본위로 생각에 끌려가던 삶에서 우뇌의 감각을 계발하고, 돌아봄으로 좌뇌와 우뇌의 분열을 합일합니다. 생각의 꼬리가 떨어진 뒤에는 좌뇌와 우뇌를 함께 써 생각을 자유자재하게 구사합니다.
원문: 생각의 꼬리가 떨어져야 ↗ · 인체로 본 성리 ↗ · 우뇌계발 ↗
‘봄’을 정신·얼·영과 연결하고, 몸과 마음을 비추고 운행하는 태양에 견주어 설명한 뒤 그 근원을 ‘본태양’이라고 부릅니다. 정신을 태양, 몸을 지구, 마음을 달에 견주면서 봄을 몸과 마음의 주인에서 태양까지 거느리는 우주의 주인으로까지 넓힙니다.
원문: 봄이란 결국 무엇인가? ↗ · 본태양 ↗
깨달았다는 생각보다 지금 자기를 놓치지 않는가를 계속 묻습니다. 몸동작을 알고 자기 말소리를 들으며 생각과 감정의 움직임을 보고, 한 생각을 냈으면 다시 거두어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안을 보면서 밖을 보고 사람과 자연을 보면서도 자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생활의 기준입니다.
원문: 세가지 봄의 공덕 ↗ · 생각과 돌아봄 ↗ · 자연 바라봄 수행 ↗
봄 책 읽기
제2권 서문 제목은 「읽기만 하면 됩니다」입니다.
“당신이 글을 지속적으로 매일 읽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이 안으로 향하게 되는 효과를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어와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데 주력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전체의 맥락과 가닥을 잡는 데 주력하게 되고, 더 나아가면 글이 주는 소리와 파장을 가슴으로 음미하며 읽게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 개념정리가 되는 동시에 수행도 함께 이루어지는 묘한 글입니다.”
인쇄본의 목차 순서입니다.
미리 읽기
처음부터 모두 읽기 어렵다면 아래 대표 원문부터 읽어보세요. ‘우선 나부터’에서 출발해 제3의 눈, 봄의 3단계, 합일에 이르는 수행, 깨달음과 증득의 차이, 합일 이후의 바라봄, 생각을 부리고 쓰는 생활까지 책의 실제 진행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자기라고 여기는 꿈에서 벗어나려면 세상과 남보다 ‘우선 나부터’ 깨어나야 한다는 출발점입니다.
밖만 보던 눈을 자기에게 돌려 생각·감정·행동을 보는 제3의 눈이 어떻게 열리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돌아봄에서 바라봄으로, 바라봄에서 늘봄으로 넘어가는 세 단계가 가장 또렷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순간의 깨달음 체험과 몸과 마음을 실제로 다루는 깨달음의 능력이 왜 다른지 원아 유종열님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몸돌아봄·마음돌아봄·본격돌아봄을 거쳐 합일한 뒤 바라봄과 늘봄으로 성장하는 전체 수행 순서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잠깐 고요해진 체험과 합일·증득을 구별하고, 생각의 원심력을 거슬러 안으로 돌아보는 힘을 강조합니다.
합일 뒤에도 자유자재한 능력은 곧바로 생기지 않으며 생활 속 바라봄이 더 깊어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생각 자체보다 생각에 꼬리를 다는 반응을 문제 삼고, 생각을 보고 살리고 다스린 뒤 필요할 때 부려 쓰는 길을 밝힙니다.
생각의 방출과 돌아봄의 회수를 한 운행으로 보고, 생각을 내고 거두고 멈추는 주인의 능력을 밝힙니다.
분열을 직접 발견하는 첫 관문부터 합일, 그리고 합일 뒤 새로 시작되는 바라봄과 성장까지 구어로 자세히 풀어낸 기록입니다.